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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교회, "남의 유익을 구하라"

  •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현식 기자
  • 송고시간 2017-08-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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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6일 전종태 오정감리교회 담임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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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태 오정교회 담임목사./아시아뉴스통신=이현식 기자

8월 6일 주일설교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3~24절)

이 시간에는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제목으로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우상 숭배가 매우 성행하였으며 우상의 제단에 드려진 많은 제물이 시장에 유입되어 유통되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우상의 제물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시장에서 파는 것은 자유롭게 먹도록 권면합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서 보낸 딤전 4:3~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으로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고린도 시장에는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음식물들이 버젓이 시장에 팔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굳이 따지지 말고 감사함으로 먹으면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묻는다면 그것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함으로 그 사람의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됨으로 그 파는 사람의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는 것이 유익을 도모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실족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그 분의 양심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의 대원칙은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자유를 제한하고 절제할 수 있을 때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여기시기 때문에, 만일 나의 자유행사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실족된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니콜러스 머레이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중요한 일은 언제나 이 소수 몇 사람이 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자세를 가지고 앞장서서 노력하는 10%의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일을 그르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가 존재합니다. 토인비 교수는 몇 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몇 사람의 독재자, 사기꾼, 아첨자, 이기주의자들이 그 부류입니다. 남의 유익을 가로채어 삼키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입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구경꾼은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러면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덕을 세우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본문 23절에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덕을 세우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전 5:11절에도,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실족케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어불성설」에 불과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도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그것이 남에게 덕을 세우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의 유익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단 한 번도 당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우리 모두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롬 15:1,2절에는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계산방법으로 나의 유익만 찾고 인색하게 이기적인 자세로 살아가면 결국에는 자신의 유익도 상실하고 그리스도인의 덕목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9:19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둘째, ‘남의 유익을 구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한상복 씨의 저서 『배려』라는 책에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습니다.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유익을 구한다는 말은 이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인(仁)이라는 말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어진 마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인(仁)이라는 글자는 사람 인(人) 변에 두 이(二)가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둘만 모여도 서로를 위해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씨라는 겁니다. 

아스퍼그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남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며,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있는 경우가 많고, 자폐증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으나, 자폐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이런 아스퍼그는 이기적인 성격과도 다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그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배려심이 깊은 사람을 들라면 저는 기꺼이 바나바를 소개하겠습니다.

바나바에 대해서는 행 4장 9장, 11장, 13장부터 15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나바는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사울이라는 청년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여 그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 앞에서 변호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이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 낙향해 있었을 때에도 직접 찾아가서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함께 사역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 도중에 밤빌리아라는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던 마가 요한이 2차 전도여행에 다시 합류하고 싶다고 하였을 때에 사울은 반대를 하였지만, 바나바는 마가 요한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하였으며 이 일로 인해 바나바는 사울과 결별하여 마가 요한을 데리고 고향 구브로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서 그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흔히 부모님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

공부는 자신의 미래와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인데 꼭 남을 위해 하는 것처럼 공부하기를 싫어하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애야, 부지런히 공부해서 남주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하는 공부보다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유익을 끼치기 위해 하는 공부가 훨씬 더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 남을 배려하면 언젠가 나도 똑같은 혜택을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마 7;12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사랑으로 먼저 베풀고 대접하다 보면 오히려 내가 은혜를 입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방 메이커인 ‘샘소나이트’를 모르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가방 회사를 세운 사람은 유대인인 슈와이더라는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동유럽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하여 이곳저곳을 떠돌며 채소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가게에 한 손님이 찾아 왔는데, 물건을 사던 손님의 가방이 찢어져서 안의 물건들이 다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는 ‘찢어지지 않는 가방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겠구나.’ 하고 손님의 편리와 유익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있던 미국 서부 덴버 시는 로키산맥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새 가방을 가지고 오는데, 산을 여행하고 갈 때쯤에는 가방이 터지고 찢어져 끈으로 묶어 가지고 가는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슈와이더는 터지지 않는 튼튼한 가방을 연구 제작하여, 마침내 성경에 나오는 천하장사 삼손의 이름을 딴 ‘샘소나이트(Samsonite)’란 상표의 가방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슈와이더의 가게는 채소 간판을 내리고 가방 간판을 달았고, 세계적인 명품 가방을 만드는 회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과 타인의 불편을 개선하려는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노력이 세계 최대의 가방 회사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유익을 위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무능하고 무익한 종인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성도라고 하는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할 줄을 믿습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해 드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래 소유하고 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 당시 알려진 세상의 90%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당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당시 대표적인 금욕의 철학자이며 반문명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디오게네스에게 대왕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보시오.” 

그때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조금만 비켜 주시오. 당신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일화는 후세에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남겼습니다. 물론 알렉산더 대왕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우는 것입니다. 욕심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관에 구멍을 내어 자기 손을 밖으로 나오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교훈을 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고전 10: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 때에 그들을 구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로 관계 전도, 생활 전도입니다.

평소에 덕을 세우고, 배려할 줄 알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섬기면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결국에는 전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피차에 덕을 세우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갚을 수 있는 길이며,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길임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