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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문화 칼럼 - 제주문화포럼] 니시카와 토시카츠·홍진숙, 교류전 통해 ‘제주신화’ 교류

  •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 기자
  • 송고시간 2017-09-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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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사카 예술가, 창작적 개입으로 한계와 가능성 확인
니시카와 토시카츠 오사카부립박물관 학예원의 ‘일본신화 연구‘ 발표.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신화를 잃어버린 20세기 문명은 참혹한 병이랄 정도로 산업화로 치닫는 현대 도시인들의 일방통행, 제주, 오사카 예술가들의 창작적 관여를 통해 한계와 가능성 타진”

이주민으로 살면서 제주를 표현하는 많은 말들을 접하며 살고 있다. 과거 삼다도라는 표현부터 최근 평화의 섬, 문화예술의 섬까지 다양한 표현들을 대면화게 된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일만 팔천 신들의 섬 제주’라는 문장처럼 매력적인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5년 이상을 제주에 살면서 제주신화를 접해온 필자는 이보다 더 제주를 대표할 수 있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일만 팔천 신들의 섬 제주’, 이는 내가 제주로 이주해 온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신들의 이야기와
제주예술에 온 정신을 뺏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주에 필자는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 동문화회관에서 진행된 한.일 신화교류전에 다녀왔다.

격년제로 제주와 일본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번 교류전은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오사카부 사카이시 동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일주일간 진행된 이번 전시회 세미나에서 양국의 신화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한.일 신화교류전 현장에서 작품 ‘천지개벽’을 설명하는 홍진숙 작가.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특히 홍진숙 작가가 대표로 발표한 제주작가 측에서는 “신화는 있던 일이 아니요, 있어야 할 일이다. 신화를 잃어버린 20세기 문명은 참혹한 병이다. 신화는 이상이다. 이상이므로 처음부터 있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비관적이긴 하지만 제주신화를 통한 예술가의 현실 참여를 강조한 부분 같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주신화의 예술적 접근이, 특히 제주비엔날레의 철학적 빈곤을 확인하면서 제주신화가 향후에는 제주미술의 든든한 한 축이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또 이번 전시에 참여한 제주작가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한.일 신화교류전의 일본측 코나다 이키 회장과 그의 작품.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신들의 존재가 모양이 있거나 소리가 있는 게 아닌데 신화를 조형으로 표현했으니 놀랍고 대단하다는 것이다.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테라스 신의 경우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 모습이고 말도 하는 신이라 비교적 그리기 쉬울 것 같다는 이야기들도 한다.

반면에 제주신화를 표현한 제주작가들은 어땠을까? 책과 자료 또 심방과의 만남 등 오랜 워크샵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었으니 결과물은 지극히 신적(神的)이다.  

사실 일본 신화에는 생김새가 사람 같고 대화도 가능한 신의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인들은 정말로 신이 사람처럼 생겼고 밥도 먹고 대화도 가능했다고 여겼던 걸까?

원래 신은 모습이 없으며 먹지도 말하지도 않는 존재라고 한다. 기도하고 제물을 바친다고 뭘 도와주는 것도 아니라는 정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오히려 신의 존재는 갑작스런 재앙이나 재난을 겪었을 때,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다. 결국 ‘신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이 화를 풀고, 벌을 거둬주도록 기도하고 제물을 바쳤던 것이니 어쩌면 제주의 신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제주도 신화 곳곳에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와 흔적이 잘 남아 있다. 그래서 신이 어디에든 존재하는 것이고 그 수가 일만 팔 천 개인 이유지 않을까? 
 
한.일 교류전 오픈일 테이프 컷팅에 나선 한일측 운영진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니시카와 토시카츠 오사카부립미술관 학예원이 일본측 대표로 재미있는 일본신화 하나를 소개했다.

일본에서 1000년 이상 유래해 오면서 유명해진 민화 ‘모모타로’ 이야기였다.

모모는 복숭아이고 타로는 맏아들에게 붙이는 이름이라고 하는데 복숭아에서 태어난 동화 속 주인공이 개, 원숭이, 꿩을 거느리고 도깨비 소굴이 있는 섬에 가서 도깨비 사냥을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모모타로가 도깨비를 퇴치하는 일이 폭력적이고 또 할머니가 강에서 빨래하는 것이 친환경적인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 등장했단다.

또 할머니가 강에서 떠내려 온 큼직한 복숭아를 집에 갖고 오는 것 또한 절도행위가 되니 아이들 교육에 안 좋다는 이야기란다.

그래서 아예 모모타로가 도깨비들과 협상해서 도깨비가 뺏었던 보물을 마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한.일 신화교류전에 참석해 작품 앞에 선 화가 세이조 타마노.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필자는 일본인이 아니지만 현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모모타로 얘기를 전할 때 모모타로가 갑주와 갑옷투구로 무장은커녕 칼조차 안 차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본다.

제주신화를 대하는 우리들이나 필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양국에 공통되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본다.
 
신화 세미나와 축하공연이 끝난 후 기념촬영에 나선 한.일 작가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신의 재앙과 관련 뱀이 나오는 이야기로 제주도 신앙과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일본 신화 중에 나라현의 미와야마(三輪山)라는 산의 신이 모모소 공주와 결혼하는 전승이 있다.

모모소 공주가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까? 미와야마의 신이 낮에는 빗함(머리 빗는 빗을 보관하는 함)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모모소 공주가 빗함을 열어 보니까 작고 하얀 뱀이 들어 있었고 그걸 본 공주가 놀라서 소리를 지른 바람에 신이 수치를 당했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모모소 공주는 화를 입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한.일 신화교류전에는 양국 초등학생들의 그림전도 함께 마련됐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마지막으로 신화의 내용을 이야기 할 때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으로 공간에 대한 개념도 등장한다.

제주도 건국신화는 바다 저편에서 신이 왔고, 바다 저 멀리에 신의 나라가 있다는 지리 감각이 등장한다.

일본 신화에도 바다에서 났거나 산에서 났다는 전승이 전해져 오는데 육지와 바다에 제한된 지리감각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세계관은 오랫동안 동서로 긴 일본열도와 북쪽에 반도가 있고 그 옆에 중국이 있는 세계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화가 문장화되기 시작한 600년대가 되자, 넓은 중국 저쪽에 더 넓은 천축이라는 부처님의 나라가 있다는 세계를 알게 되고 천상에는 천국 정토나라, 지하에는 지옥이 있다는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불교는 저승과 이승, 전세를 가르쳤고 지금에는 미래, 현재,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 인식이 등장한다. 물론 제주도에도 자청비 이야기와 같이 불교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일 신화교류전에 참가해 작품 앞에 선 화가 김석출.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이처럼 필자는 제주신화 한.일 교류전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화에 대한 백성들의 접근이 달랐듯 한.일 지역 예술가들이 신화를 해석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이번 교류전을 통해 제주신화가 지역 문화예술 콘텐츠의 독보적 존재감을 확인한 건 행운이고 반면에 아직은 부족한 조형성과 철학의 완성에 대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된 건 정말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