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뉴스홈 전체기사 정치 산업ㆍ경제 사회 국제
스포츠 전국 연예·문화 종교 인터뷰 TV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67

  •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홍근진 기자
  • 송고시간 2018-03-20 08:55
  • 뉴스홈 > 칼럼(기고)
[기고]노랑의 물결을 타고 전해져오는 봄의 활력
남북통일 기원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본지는 지난해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1년2개월 동안 16개국 1만6000km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고 중국과 북한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올 예정인 통일기원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기고문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다.[편집자주]
 
이란의 베흐샤흐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만난 유채꽃 밭이 봄을 알리고 있다.(사진=김창건)

달리기는 이 자연과 가장 에로틱한 만남의 순간이다. 자연이 가장 에로틱할 때는 역시 봄이다. 봄에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나도 이 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대지 위를 달린다. 온몸의 신경이 다 일어나서 사랑하는 자연을 깊고 아련하게 느낀다.

달리며 심장의 박동 소리가 빨라지면 내 삶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네카를 지나니 이제는 그 거대한 엘부르즈 산맥의 기세도 다하고 낮은 산 가득히 유채꽃 향연이 펼쳐졌다.

생동하는 봄의 대지에 노랑의 물결이 일렁이니 가슴에 감동이 피어난다. 

감동은 스위치가 되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요동치는 심장은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흐르는 활력의 원천을 찾아 철철 뿜어 올리는 모터가 된다.


활력의 생수는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영양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올려진 활력의 생수는 육신과 영혼을 넘나들며 의욕으로 자신감으로, 독특한 창의력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란 베흐샤흐르에 있는 식당에서 내려본 모습. 유채꽃밭 너머로 카스피해가 보인다.(사진=김창건)

노랑의 물결을 타고 전해져오는 봄의 활력을 즐기며 달리고 있을때 한 사람이 차를 가까이 대고 뭐 도울 것 없냐고 능숙한 영어로 묻는다. 베흐샤흐르라는 작은 도시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지 않지만 지금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식당이 이 근처에 있는지 물었다.그는 자기를 따라 5분만 가면 좋은 식당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나는 금방 상대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식당은 일종의 유원지 비슷한 곳이 있었다. 언덕 위에서 저 아래 노랑의 유채꽃 밭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그 뒤로 가스피해가 아련히 보인다.

곳곳에 정자모양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 유채꽃처럼 피어나는 여고생들이 봄소풍을 나왔다. 여고생들은 우리의 교복 같은 옷을 입었는데 다른 것은 교복과 같은 색의 히잡을 썼다는 것 뿐이었다.

처음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멀리서 힐끗힐끗 쳐다볼 뿐 막상 다가오지 못했고 우리도 이슬람 율법이 준엄하다고 알고 있어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우리가 선생님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자 한 학생이 슬며시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붙이는 척하면서 다가왔다.

우리를 안내한 알리씨는 이 학교의 영어선생님이라고 한다. 영어는 정규과목에 없어서 방과후 과목으로 교육을 하는데 학생들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봄소풍 나온 이란 여고생들. 우리의 교복 같은 옷과 히잡을 쓴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김창건)

일단 물리적인 거리를 좁힌 여학생들은 당돌하기까지 하였다. 주몽과 대장금을 묻더니 김수현, 이민호까지 물을 즈음에는 내 주위에 여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애 주위에는 여학생들 특유의 생기발랄한 짹짹거리는 기분 좋은 소음이 가득했고 액스오와 비티에스에 대해서 물었다. "창건아! 비티에스는 뭐니?" "방탄소년단이요" 

그 중의 한 학생이 내 나이를 물었다. "I'm 16" 금방 박수가 터지고 난리가 났다. "I wish I were a 16, but I'm 60" 정말 내가 오늘처럼 16살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내 열여섯 유채꽃보다 더 노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노란 꿈이 세파에 시달리며 피어나지 못하가 60세에 다시 평화의 노랑꽃으로 피어나 유라시아대륙을 달린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카스피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 유채꽃보다 더 노란 젊음에 둘러싸여 그들이 살아갈 노랑의 평화를 가슴에 품는다.

아직도 피어나지 않은 석류나무 과수원과 유채꽃이 바라다 보이는 식탁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알리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시 한 여학생이 다가온다.

내게 자기가 말하는 것을 따라하라고 한다. 이란 말이었다. "세상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이라고 알리 선생님이 번역해준다. 
 
배흐샤흐르에서 봄소풍 나온 여고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강명구)

나는 다시 해보라고 하여 입모양을 그대로 보며 따라했다. 성공적이었나 보다. 뒤따라오던 여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한다.

그러더니 다른 여학생이 또 한 문장을 던져준다. "우리 부모님 건강하세요!" 내가 또 잘 해냈다보다. 이번엔 박수와 환호가 더 커졌다.

그러자 재미를 붙였는지 또 한 학생이 문장을 던져준다. 나는 "창건아 이거 그림이 될 것 같으니 비디오로 담아"하며 그 여학생이 던져준 문장을 따라했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하다가 "그러면 여러분들도 내 말을 따라 해보세요!" "One world, One Korea!" 학생들과 나는 입을 모아 봄 동산이 흔들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청춘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잠시지만 나이를 잊게 해주는 시간은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며 고통을 감내한 내게 유라시아가 주는 커다란 선물 같은 귀한 시간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봄동산에서 하나의 세상에서 평화롭게 사는 꿈을 공유하는 것은 귀한 선물이었다.
 
이란 베흐샤흐르의 한 식당 앞에서 봄소풍 나온 여고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사진=김창건)

그런데 선물은 창건이가 받은 선물보따리가 더 커보였다.

나보다 더 크고 잘생기고 젊은 창건이 곁에는 더 많은 여학생들이 따라붙어 공책과 메모지를 펼치며 사인해달라고 몰려들어 있었다.

나도 충분하게 귀한 시간을 즐겼는데 왜 이 순간에 비교를 하고 질투가 나는지 모르겠다.

창건이도 이 귀한 순간을 즐기느라 정신줄을 놓았는지 아까 비디오를 찍는 것 같더니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나중에 보니 그역사에 남을 귀중한 영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즐겁고 귀한 시간이라도 붙잡아 멜 수는 없다. 이제 오늘 나머지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작별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작별도 쉬운 건 아니다.

다시 그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어 사인을 해달라고 하고 사진촬영을 하자고 하고 김수현, 이민호를 만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냐고 묻고 인스타그램이나 이멜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란의 한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알리씨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김창건)

기분 좋은 감동의 여운을 안고 봄 대지 위를 뛰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참을 그렇게 띄고 있는데 알리 선생님 차가 멈추더니 오늘은 어디서 잘거냐고 물어서 오늘 10km만 더 뛰면 일정이 마무리 되는데 아마 이 근처에서 호텔을 정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집에 방이 많으니 놔서 자라고 해서 또 덥석 고맙다고 인사를 해버렸다.

강의가 6시에 끝난다고 해서 차 에어컨도 고치고 시간을 보내다 만나서 그의 집에 갔다. 그의 집에는 손님이 온다는 소리에 가족들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 가족의 집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가족, 여동생 가족이 같이 살았고, 옆집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조카가 왔다.

응접실은 넓었고 우리처럼 좌식문화이다. 신발은 벗고 양반자세로 둘러얹아 오렌지와 견과류에 차를 마셔가며 이것저것 질문공세가 펼쳐진다.

특히 여자조카는 고등학생인데 영어도 잘하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어서 물어보는게 많다.
 
이란의 한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알리씨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김창건)

그런데 나는 얼마가지 않아서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저녁을 준다든가 준비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달리는 일이 워낙 체력소모가 많아 저녁 여섯시에는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아무리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자야하는데 이란인들의 저녁식사는 10시쯤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생각이 났다.

이제 우리끼리 먹는다고 우리 음식을 할 수도 없었고 굶고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례인지 알면서도 먼저 일어나 쉬어야겠다고 방에 들어갔지만 배에서 꼬로록 소이는 멈추질 않았다.

거의 10시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저녁이 준비됐다고 해서 나가보니 방바닥에 식탁보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늘어 놓았다.

중산층 이상의 집이었는데 우리의 밥상 같은 것도 없었다. 음식은 검소했다. 토마토와 오이, 양파를 썰어서 만든 야채샐러드와 빵과 약간의 다진고기에 양념을 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식사를 마치고 또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 대가족은 거의 2시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았다.
 
이란의 한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알리씨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사진=김창건)

참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졌지만 그 대가는 컸다. 

내가 유라시아를 달리는 원동력은 남보다 출중한 체력이 아니라 몸의 균현을 잘 잡는 조절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감기까지 들어 일주일 이상을 고생했다.

이 글도 일주일만에 마무리하는 것 같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많은데 어떻게 들려주어야할지 걱정이다.

들판에 일렁이는 노랑의 물결을 바라보며 팽목항의 매서운 바닷바람에 날리던 노랑의 물결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고생들과 웃고 떠들며 단원고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슴에 안고 달리는 노랑리본이 있다.

3년 전 팽목항을 찾아 노랑 종이배로 띄워 보낸 나의 헌시가 하나 있다.


[하얀 목련]

이렇게 많은 꽃들이 피지도 못하고

슬픔에 바다에 잦아드는구나!

그 고운 꽃잎 위에 통곡과 애절한 이름을 하나하나 얹는다.

종이배 노란 리본 매달아 띄워본다.


어른 된 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을 때

구차한 오만 원 권은 햇볕에 말려지는데

꽃망울들은 심연으로 가라앉는구나!

살아난 꽃들은 처연해 소복으로 갈아입는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렇게 가슴을 위어뜯는구나!

때 아닌 국화가 놓인 자리에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목련으로 다시 피어나렴.

냄새나는 세상에 꽃향기로 머무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