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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숙 ‘신의 딸 서순실 심방전’, 프랑스에서 주목 받은 ‘제주신화’ 선보여

제주신화, 고독한 현대인의 대표 도시 뉴욕 전시도 기대

  • 2019-08-09 11:12
  •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문지숙 사진전 개막식 퍼포먼스 현장 사진.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사진에 담긴 제주신화(혹은 제주굿)는 선물로서의 가치가 분명하다. 기호의 제국이라는 사진은 분명 부적 이상의 신묘한 영험이 있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죽은 사람의 영혼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 질문에 대면하는 조형성에서 프레임이요 게슈탈트적 측면에서 일관화 된 유형성이다.
 
서로의 기호가 굿판과 도시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서 늘 춤을 춘다. 위안만이 공존한다.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굿판의 이미지는 관객을 통한 언어의 오해(오독)까지 이어지지만 고독감 뒤에 얻는 위안의 꽃밭을 외면할 수 없다.
 
문지숙 작가의 사진전에 걸린 서순실 심방의 굿하는 모습.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누구나 찍지만 아무나 다가설 수 없는 점, 선, 면이 있다. 사진가 문지숙의 점, 선, 면은 오롯이 생명성으로 모이게 된다.
 
관람객들은 위험을 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해녀의 일상, 가족을 잃고 병이든 사람들, 자식들의 안녕을 바라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도 등을 조형으로 철학으로 대면할 수 있다.
 
들어주고 신에게 전달하는 심방의 역할은 사진의 게슈탈트(철학적 기호)로 변환되고 관람자에게까지 이어져 위안이 된다.
 
서사성과 상상력을 동시에 담아내는 일, 보이는 대로 찍지 못하고 또 기술적인 어려움도 넘어서야 하지만 존 사코우스키가 말한 <사진, 그 이상의 것>을 만나는 비상구가 되기도 한다.

 
문지숙 사진전 개막식 퍼포먼스 현장 사진.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생각하는 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어려움까지 계산한 문지숙 작가의 치밀한 혜안이 전시장 곳곳에 널려 있다. 15일까지 제주시 예술 공간 이아에서 열리는 문지숙 작가의 전시 ‘신의 딸_서순실 심방전(展)’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프레임의 기술적 해석, 기호가 전달하는 관객의 몫, 디테일한 사진이 주는 지각코드 게슈탈트까지 서순실 심방, 김녕마을과 해녀를 다룬 작가의 사진들, 인터뷰 영상, 제주굿판에 걸리는 종이 조형물인 기메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문화예술 섬 제주’, 무엇이 제주다음인가? 지금 화산섬 제주는 이주민이 넘기 힘든 이방(異邦)의 세계로 변해가고 있다. 비전문가에게 쉽게 허용하지 않는 신화 고유의 영역, 형상만으로는 완성하지 못하는 신화사진의 한계 역시 그런 제주를 보여주는 기호들이 되었다.
 
문지숙 사진전 개막식 퍼포먼스 현장 사진.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녀는 2017년 평대리 해녀를 카메라에 담아 '바당꽃'을 피웠고 2019년 '신의 딸_서순실 심방'이란 꽃으로 제주에서 두 번째 이야기를 꽃 피웠다. 작가는 암호들을 풀었고 새롭게 기호들을 만들어 새로이 둥지를 튼 땅에 선 모든 이들에게 제주다움으로 위안을 선물했다.
 
필자는 이를 사진의 피사체와 작가적 내면을 연결한 ‘중립적 시선’이라 표현한다. 전시장의 기호들은 프린트와 신의 옷감(천)을 통해 제주다움이라는 게슈탈트의 경계를 넘었고 작품의 꼿꼿함은 어느 한 곳에 편향되지 않아 점, 선, 면으로 만나도 편하다.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매개자(심방)를 색으로, 흘림으로, 시선의 빗김을 통해 관객들에게 연결한 점은 모두 예술가의 능력이고 작가의 꽃밭이다. 그 꽃밭이 프랑스 아를과 루앙에 이어 뉴욕까지 흥분시킬 것이다.
 
문지숙 사진전이 열리는 예술공간 이아는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다.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 기자
 
두 세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그녀는 제주신화(굿) 사진 계보에 이미지 중심의 개념 기호와 심방의 인지심리를 잘 다루는 여성 작가이다. 또 사진의 ‘명쾌한 유형성’까지 이끌어 나갈 사진가이다. 화산섬 제주와 서울을 이어 뉴욕 전시까지 이어지는 동력이다. 오늘 필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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