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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3-26 12:38
  • 뉴스홈 > 종교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부끄러운 제자도]

(마가복음 10:32-52)


1. 일반적인 제자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제자를 뽑을 때는
그가 가진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
재능이 탁월하거나 마인드가 특출나거나
아니면  성실성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럽거나,

여튼 무언가 탁월한 점이 있어야 제자를 삼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제자의 성공은 스승의 영예니
누군들 탁월한 제자를 원하지 않겠는가?

2. 주님이 뽑은 제자들

그런데 주님이 뽑아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함께 긴 여행을 한 제자들에게는
그런 탁월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결같이 찌질하고 답답했다.
어떤 면에서 찌질하고 답답했을까?

첫째, 놀라고 두려워 함

(막 10:32, 새번역)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앞장 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곁에 불러 놓으시고,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일러주시기 시작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이 하시는 파격적인 행동과 행보를 보면서 
계속 놀라고 두려워했다.
탁월성이 있는 제자라면 마땅히 
주님의 행보를 보고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스승이신 주님을 닮아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파격을 
전혀 이해할 생각이 없었고
그저 놀라고 두려워하기만 했다.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는다는 말에 대해서는
두려워서 묻지도 못할 만큼 찌질한 제자들이었다. 

둘째, 주님 말씀을 듣지 않음

주님이 자신이 받을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다시 가르치셨다. 
주님은 계속 그 부분을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은 직후에 제자들의 말이 충격적이다.

(막 10:35-37, 새번역) [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3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일단 '영광받으실 때에'라는 말이 충격이다.
주님은 고난과 죽음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말과 전혀 상관없이 
'영광'을 말하는 제자들이었다. 

탁월성이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내용은 듣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제자들은 전혀 성실성이 없었다. 

셋째, 심지어 한 자리 하고 싶어함

주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어했다.
한 자리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님은 낮아지고 섬기러 오셨는데
제자들은 높아지고 섬김을 받고 싶었다.
제자로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3. 제자들을 부끄럽게 한 소경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눈먼 거지인 바디메오를 만났다.
그가 주님께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막10:48, 새번역)
주님이 그를 불러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대화가 이어졌다.

(막 10:50-51, 새번역)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바디메오는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알았다.

주님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도 알며
그것을 위해 주님께 매달리는 간절함을 가진 바디메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 10:52,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책망을 받았는데
바디메오는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었고 
그래서 스스로 주님을 따라갔다.

주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이 
크게 부끄러워지는 사건이었다. 

4. 왜 이 사건을 이 위치에 배치했을까?

제자들이 허망한 것을 주님께 요구한 바로 그 다음에
바디메오가 적절한 것을 주님께 요구하고 
그 믿음대로 구하는 것을 받은 사건이 배치되었다. 

기록자 마가는 왜 이렇게 글을 배치했을까?
그 의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
제자들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리라.

제자들의 수준이 한심한 수준이며
제자들은 결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두 사람의 목소리다.
마가 자신의 목소리와 베드로의 목소리.
마가는 베드로에게 배웠고
베드로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것은
분명 베드로의 의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자신과 제자들의 수준을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가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말하는 사람과 글쓰는 사람은
자신의 업적은 부풀리고 
자신의 과오는 축소시키거나 숨겨서 
자신이 높아지려 하지만,
베드로와 마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왜 자신의 과오는 크게 부각시키고 
자신의 공은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그것이 제자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는 자격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님을, 
무능하고 자격없어서제자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순전히 주의 은혜로 제자로 선택되고 
훈련되어 가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5. 나는?

그래서 마가복음의 기록을 볼 때마다 깊은 감격이 올라온다.
나는 무능하고 자격이 없어도,
아니, 무능하고 자격 없기 때문에
제자의 길로 초대를 받은 것이 깊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함가 찌질함 때문에 주의 은혜의 크기가 
강조되는 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의 삶을 볼 때마다 
감격을 누릴 때가 많다.
나는 결코 이런 삶을 살아갈 정도로 
능력이 있거나 자격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건과는 거리가 멀고 
인격의 수준도 찌질하기 짝이 없었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온통 돈 버는 일에만 
온 삶을 다 바치다시피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그야말로 나 한 사람과 내 가족 건사하는 것 외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대학생 때 시작한 말씀묵상이
수시로 나에게 부담을 던졌고 
삶에 어려움이 올 때나 갈급함이 생길 때면
언젠나 말씀 묵상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던 언젠가부터 마음에 깊은 공허감이 찾아왔다.
그대로 먹고 사는 데만 올인한 삶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어설프게라도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기에
말씀이 나의 마음에 그런 공허감을 느끼게 한 것이리라.
그 공허감은 말씀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찌질하고 이기적이고 희망 없는 나였지만
살고 싶었고 신자다움을 회복하고 싶었다.
말씀을 더 깊이 붙들었고 
그 갈망은 더 깊어져갔다.

그 갈망의 깊이가 날마다 더 깊어져서 
우여곡절 끝에 지금 목사로 살아가는 
말도 안 되는 복된 삶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회한과 부끄러움의 눈물이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다.

나는 세상에 있는 누구라도 
주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나조차도 
이렇게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하셨는데
주님이 제자의 삶을 살게 하지 못할 사람은 
결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또한 있다.
자신의 찌질함을 모르는 사람이요,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 됨과 부끄러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찌질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베드로와 마가는
그래서 나에게 깊은 위로를 준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찌질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많다.
그래서 베드로와 마가의 고백이 담긴
마가복음의 기록들을 읽고 묵상하면서
너무나 감사하다.

이런 찌질하고 부끄러운 존재인 나조차도 
제자의 길을 걸어가고 
결국 주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자격없는 나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은혜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온 맘으로 찬양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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