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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백석대학교 역사신학 장동민 교수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3-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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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대학교 장동민 교수.(사진제공=백석대학교)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다음의 유명한 시편을 읽어보자. 바벨론 포로지에서의 삶을 요약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5,6)

씨를 뿌리는데 왜 눈물을 흘릴까? 농사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보통 밀 한 알에 다섯 알 거두었고 많이 최고로 많이 거둘 때 열 알을 거두었다. 추수한 곡식 가운데 한 알은 다음 해의 농사를 위하여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하였다. 한번은 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추수 때까지 여러 달이 남았는데 먹을 것이 없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울어대지만 파종을 위하여 남겨 둔 곡식을 먹일 수는 없다. 초근목피를 먹더라도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래서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몇 달이 지난 후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시126편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요4:37-38))

제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의 구원이 오는 줄 생각하였으나, 눈물로 씨를 뿌린 다른 이들 때문에 거두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뿌리기만 하고 거두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둔다. 

우리나라 기독교 성장의 역사를 볼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이 꼭 들어맞는다. 한국전쟁 후 한 세대에 걸쳐 우리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 전례가 없는 성장을 경험하였다. 그 세대 부흥의 주역들은 그 놀라운 부흥과 성장이 모두 자신들의 열심 덕분인 줄 착각하면 안 된다. 한 세대 전 혹은 두 세대 전,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한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이 씨 뿌린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선교사들은 문명사회를 등지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에 오기로 결심하였고, 가난한 백성과 백정과 버려진 기생의 아이들과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느라 건강을 해쳤고, 자신의 아내와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이 땅에 묻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도 함께 씨를 뿌렸다. 그들은 복음을 받은 기쁨에 새로운 삶을 결심하였고, 재산을 바쳐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노비를 해방시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일제의 압박을 견디며,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고, 공산주의에 맞서다가 순교를 당하였다. 한국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은 이들이 눈물로 씨를 뿌렸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는 성장의 열매를 따 먹기는 하였는데, 다음 추수를 위하여 씨를 뿌리는 일에 실패하였다. 복음 때문에 축복을 받은 이들이 복음을 제쳐두고 축복을 택하였다. 번성할수록 죄를 범하였고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쳤다. 성도들은 큰 아파트와 자녀들의 대학을 위하여 모든 힘을 쏟았고, 목회자들은 한 영혼에 대한 아픔보다 큰 교회와 박사학위와 세속적인 권력을 취하였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의 몸을 찢는 분열의 죄를 범하였고, 사회가 교회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외면하였다. 씨를 뿌리지 않았으니 거둘 것이 없다. 2000년 이후 교회는 내리막길로 치닫고, 이제 앞으로 한 세대는 추수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윤동주 시인(1917-1945)의 ‘병원’이라는 시가 있다. 해방되기 6개월 전 28세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 과거 일제 강점기 붉은 벽돌로 지어진 병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가 지금 그 병원에 환자로 누워 있다는 마음으로 읽어보자. 눈물로 씨를 뿌렸던 한 젊은이를 그리면서 그의 좌절과 희망을 새겨보자.

병 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 본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는 구절을 만났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해 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갈 청년 기독교인의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야할 시대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대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 영광스런 시대를 살았던 늙은 의사들은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병이 없다. 이렇게 좋은 세월을 살면서 왜 아프다고 엄살이냐?” 
그러나 젊은이가 성낸다고 해서 질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윤동주, “서시”) 희망의 금잔화를 가슴에 꽂고,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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