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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삼일교회 학원선교부 박길웅 전도사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3-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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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학원선교부 박길웅 전도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인생역전, 버려진 자에서 따르는 자로”
(막10:32-52)

1.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어느 순간인가부터 이름이 없어지게 된다. 연애할 때나 결혼 초에는 ~씨 라고 불리며 이름을 곧 잘 들었겠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이름보다는 누구누구 엄마라는 식으로 불리곤 한다. 

2.이 때 많은 엄마들이 자기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삶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름’은 누군가에게 불려질 때 ‘나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각인케 하는 통로와 수단이 된다.

3.오늘 본문에는 거지이자 맹인으로 표현된 ‘바디매오’가 등장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천년전에도 거지라는 신분은 매우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였다. 게다가 눈까지 보이지 않으니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가졌다 해도 무방하다. 

4.그리고 그의 이름은 ‘디매오의 아들’이다. 모든것이 그런것은 아니지만,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이름 앞에 ‘바’가 붙게 되면 ~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거지이자 맹인인 이 사람은 이름조차 없는 버려진 ‘디매오의 아들’이었다. 


5.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자리에 위치해 구걸하여 하루하루를 빌어 먹고 사는 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일테니 소문이나 소식에 대해서는 귀가 매우 밝았을 것이다. 특히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듣는 청각에 있어서 더욱 발달한 경우들도 자주 접하게 되기도 한다.

6.바디매오 역시 당대 최고의 화제였던 예수라는 청년에 대해서 익히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베푼 기적이나 치유의 역사들은 언젠가 그를 만날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꼭 놓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7.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여리고 밖으로 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있는 자리에서 힘껏 소리를 질렀다. “예수여”,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여”. 그의 목청이 터져라 외쳐갈 때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그를 꾸짖기 시작했다. 맹인에 거지였으니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는 극에 달했을 것이고, 사람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8.그에게 장애물이 생겨난 것이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의 소망의 전부였는데, 사람들의 방해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잃어가고 있었다. 머리위로 날아오는 주먹질과 다리를 걷어차던 발길질 사이에서 포기할 법도한데, 그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여!”,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9.사람들은 그를 더 제재하려 세차게 꾸짖었지만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 “그를 데려 오라” 그의 머리를 세차게 쥐어박던 사람들, 그에게 발길질을 했던 사람들의 태도가 이내 바뀌었다. 그리고는 ‘안심하라’는 말로 그에게 나지막한 희망을 건내준다. 그가 안심해야 하는 이유는 놀랍다. 바로 ‘예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이다.’

10.주님은 물으셨다.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다른 소원이 없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는 것. 그 하나만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소원이었다. 주님께서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 즉 예수님께 부르짖고 외쳐 그를 만나기만 한다면, 자기도 볼 수 있다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셨다. 

11.바디매오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얻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디매오는 그토록 원했던 눈이 떠지자 자신이 바랬던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이다. 

12.때때로 우리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주님 앞에 죽을 것처럼 기도하고 매달리다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님과 적정거리를 두고 나 홀로 살기에 힘을 쓴다. 

13.주님 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하나로 그의 인생을 주님께 올인하였던 바디매오를 보며, 우리의 인생을 구원해주신 주님 앞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모든 조건에 있어서 바디매오보다 좋은 환경과 상황 가운데 살고 있는 나는 왜 그보다 더 감사하지 못하고 더 드리지 못하는 것일까.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