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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새생명교회 조태성 목사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4-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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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신학원 조태성 교수.(사진제공=새생명교회)


*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방법 (3) ‘소통’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에서 배운 다른 이야기도 잠시 나눠보려고 한다. 성령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는 부분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1. 
중국 역사를 보면 전설처럼 전해지는 하나라부터 은, 주, 춘추전국, 진, 한, 삼국(위, 촉, 오)지, 전-동진, 남북조, 수, 당, 오대십국(요, 금, 송), 원, 명, 청나라가 순서대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 시대를 보자. 한나라의 역사에서는 ‘소통’의 위대한 능력을 배울 수 있다. 소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어디서나 중요하다. 오늘날 가정과 직장, 이웃과 교회에서의 모든 관계 문제는 소통의 문제다. 무엇보다 성령님과의 관계에서도 소통이 참 중요하다. 원활해야 한다.


2.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한나라가 대표로 표현되며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통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한나라보다 강력한 왕국이 하나 있었다. 바로 초나라다. [삼국지]와 비견되는 [초한지]가 바로 이들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초나라의 왕은 저 유명한 항우다. ‘항우장사’라는 말이 있듯이 항우는 힘이 좋았고 무력이 출중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얼굴도 잘 생겼다. 주변 사람들을 살뜰하게 잘 챙겼다. 부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존경받는 호방한 성품의 소유자다. 리더십도 뛰어났다. 학문도 뛰어났다. 한마디로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금수저다.

3.
반대로 늘 빌빌대며 흡수 위기에 놓인 나라가 바로 한나라다. 한나라 왕은 유방이다. 그는 성격이 괴팍하다. 술, 여자, 싸움, 음담패설 등 못된 짓은 다 하고 싸돌아다닌다. 나쁜 것은 다 좋아했다. 깡패다. 양아치다. 

권력을 차지했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은 1도 받지 못했던 왕이 바로 유방이다. 사실 출신도 가난한 평민 출신이었다. 똑똑하지도 않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흙수저라고 볼 수 있다. 

4. 
그러니 유방은 성격이 어땠을까? 늘 소심하고 조급하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괴팍하다. 삶이 치열했다.

유방의 리더십이 형편없으니 초나라 항우와 수없이 싸웠는데 항상 진다. 어쩌다가 한 번은 전투에서 이길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99번 싸워서 99번 다 진다. 그런데 딱 마지막 한 번의 전투에서 이겼다. 그 한 번의 전투로 나라의 운명이 급격하게 바뀐 거다. 도대체 어떻게 이긴 것일까? 물론 전투에서의 전략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5. 
초나라 항우는 계속 이기다보니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자기가 대단한 줄 아주 똑똑히, 정확하게 잘 알기 시작한다. 그러니 신하들의 이야기나 제안, 조언을 점점 듣지 않는다. 자기 말대로 해서 전부 승리했기에 조언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전투에서 이길수록 명령만 내리고 자기 말만 따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강요하고 따르라고 하는 이것을 ‘하여(何如)’라고 한다.

6. 
반대로 한나라 유방은 계속 지다보니 비루먹은 개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자기가 무식한 줄 잘 알게 된다. 신하들의 조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자존심을 꺾는다. 계속 묻고 또 묻는다. 

낮아진 마음, 열린 마음으로 들으려는 그것을 ‘여하(如何)’라고 한다. 똑같은 글자지만 순서만 바꿔놓으면 하늘과 땅처럼 너무나도 다르다.

7. 
마지막 전투에서 초나라왕 항우는 연인 우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초나라는 크게 패하고 근처까지 한나라 군인들이 점령하고 에워쌌다. 우희는 한나라 군인들이 조롱하며 큰 소리로 초나라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노래에 맞춰서 왕에게 춤을 보여주고는 칼로 자결을 한다. 이 장면에서 나온 말이 바로 ‘패왕별희’이며 장국영씨가 주인공이 되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면서 시작은 창대했으나 망조가 들었던 항우는 ‘여하(如何)’에서 ‘하여(何如)’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흙수저요. 깡패 같은 인생, 덕이 없는 리더십 유방은 ‘하여(何如)’에서 ‘여하(如何)’로 겸손히 성숙해졌다. 마지막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전쟁의 승패를 갈랐던 열쇠가 결국 ‘하여(何如)’ 혹은 ‘여하(如何)’의 소통 자세였던 거다.

8. 
‘소통’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경청’과 ‘간언’이다. ‘경청’은 윗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다. 이전에 잘 몰랐을 때는 경청을 아랫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말씀, 강의나 세미나를 들을 때 “경청한다.”고 잘못 표현했었다.

‘간언’이 바로 아랫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다. 윗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여 듣고, 아랫사람은 불의한 일을 보거나 좋은 의견이 있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9. 
그래서 ‘여하(如何)’의 소통은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 나누며 동행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감히 내가 압도적으로 말을 많이 한다. 자꾸 스토커처럼 성령님을 생각하며 좋아한다. 그분께 수시로 말을 건다. 사랑이신 성령님께서 경청해 주시는 거다. 

대신 나는 불신앙의 고백이나 말로 성령님께 근심을 드리지 말고, 영적으로 간언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영적인 간언이란 중보적인 기도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 듀웰 목사님의 책 제목이 참 좋다.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

10. 
어려운 시국, 불안한 마지막 시대에 복음의 능력이 찬란하게 드러나도록 기도로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움직여야겠다. 성령님과 순수하게 동행하며 교제 나누다보면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전달해주시리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0)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영적 ‘간언’의 역할 하는 중보적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아픔을 알려주시리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눈물을 보여주시리라. 그러니 성령님을 찾자. 그분께 말을 걸자. 그분을 계속 생각하자. 성령님과 소통하며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