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뉴스홈 전체기사 정치 산업ㆍ경제 사회 국제
스포츠 전국 연예·문화 종교 인터뷰 TV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 참된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5-23 17:28
  • 뉴스홈 > 종교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참된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시편 21편)

1. 승리를 얻다

시편 20편은 왕의 출전을 앞두고 그를 축복하고 
승리를 기원한 시편이고,
시편 21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과 군인들을 

맞이하면서 기쁨의 노래를 한 시편이다.

(시 21:1, 새번역) 주님, 주님께서 우리 왕에게 힘을 주시므로 왕이 기뻐하며 주님께서 승리를 주시므로 왕이 크게 즐거워합니다.

전쟁에 나가 승리를 했는데,
이 승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차와 기마와 자신의 힘을 의지해서 치른 전쟁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고 치른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다른 나라와 싸운다면 
승리를 얻기 어려웠다.

전차와 기마를 많이 소유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켜서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면 다른 나라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 승리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은 자신보다 강한 나라를 만나면
언제든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차와 기마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승리를 얻은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2. 승리의 의미

이 승리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시 21:4-7, 새번역) [4] 왕이 주님께 생명을 구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장수를 허락하셨습니다. 오래오래 살도록 긴긴날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5] 주님께서 승리를 안겨 주셔서 왕이 크게 영광을 받게 하셨으며, 위엄과 존귀를 그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6] 주님께서 영원한 복을 왕에게 내려 주시고,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의 기쁨이 넘칩니다. [7] 왕이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사랑에 잇닿아 있으므로,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승리가 가지는 의미는,
이 승리가 한 번에 끝나는 승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약자는 지고 강자는 이기는 것이
전쟁의 속성일 수밖에 없는데,
약자인 이스라엘이 하나만 의지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 말은,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전쟁에서도
자신의 전차와 기마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계속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시편은 왕에게 주어질 '영원한 복'을 노래하고 
왕이 오직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힘이 부족하고 전차와 기마가 턱없이 부족해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은
앞으로도 자신은 약하겠지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담대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

하나님만 의지하면 세상에서 가장 약한 나라임에도
어떤 전쟁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영원한 복,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삶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3. 신자의 현실

이 땅을 살아가는 신자의 현실은 어떨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신자는 약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믿는 신자라는 말은,
이 땅에서 권모술수를 쓸 수 없고 
거짓을 말하면 양심에 찔리고 
아부와 아첨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돈이 많아도 약자일 수밖에 없고 
돈이 없으면 더 약자인 존재가 신자다.

그런데 신자가 매일 아침 눈을 떠 맞이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날이다. 
약한 상태로 슈퍼 갑의 세상과 매일 맞장을 떠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신자는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세상과 같이 자신의 돈과 힘을 의지하든지,
아니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든지.

세상과 같이 자신의 힘과 돈을 의지하면
점점 신자다움과 멀어지고
교회만 다니는 불신자의 삶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면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작은 승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해서, 죽을 것 같고 패배할 것 같은 현실에서
예상치 못한 작은 승리를 경험하면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더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승리를 또 얻게 된다.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신자는 점점  
'영원한 복'이 가능하겠다는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삶도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그 경험을 누려가는 것이 
신자의 특권이다. 

4. 나는?

젊은 날에 부산의 대형학원에 입사했다.
입사하면서 마음에 작은 결심을 했다.
'금주, 금연과 주일 성수'였다.

그 이전에도 술 담배를 할 적이 없었고 
주일은 지키고 있었지만,
대형학원이란 곳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수많은 강사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기에
혼자서 술을 거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학원 강사가 주일을 빠지지 않고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금주와 주일 성수에 대한 결심을 하면서
그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어렵게 얻은 대형학원의 강사 자리이지만
과감하게 포기하려고 생각을 했다.

신자로서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학원에 입사하자 말자 위기들이 찾아왔다.
부원장은 일주일에 6일을 술 마시는 사람이었고 
강사 전체 회식을 너무 자주했다.

한 잔을 받으라는 부원장의 압박(?) 앞에
'저는 술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거부했다.
'왜?'라는 질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더니
'다른 예수쟁이들은 잘도 마시더라.'라고 말하면서 
딱 한 잔만 받으라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학원 입사한 지 1주일만에 학원에서 잘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술 마시지 않습니다."

학원에서 잘릴 줄 알았는데
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 아주 중요한 일을 누군가가 맡아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부원장이 나에게 맡기라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윤용 저 놈은 적어도 사기는 치지 않을 것 같으니
저 놈에게 맡겨라.' 라고 부원장이 말했다고 한다.

학원이라는 곳이 시험기간이 되면
주일에 근무를 하는 것이 정상이고 평범한 일이다.
나는 학원에 입사하면서 미리
주일에는 근무하지 못한다고 말을 했었다.

주일을 출근하지 않는 대가로 
주일 외의 모든 공휴일에
당직 근무를 서야 했지만,
주일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럼에도 시험기간이 되자 
주일에 나와서 딱 한 시간만 보충수업을 하고 가라고 
부장 강사가 부탁을 했다.
어렵사리 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나는
"형님. 죄송한데 사표 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 나에게 주일에 근무하라는 압박은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술 마시지 않는 것과 주일을 그런 식으로 지키는 것은 
너무 율법적인 것이 아니냐?
그게 신앙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질문을 하고 항변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예전의 그 말과 똑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면 되겠지만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금주와 주일성수를 통해서 얻은
신앙적인 작은 승리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승리들은 이후의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나는 말씀에 삶을 걸기로 했다.
금주나 주일성수와 같은 외적인 것에는 
그럭저럭 신자다운 삶을 지켰으나,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동료 강사들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받으려 하는 나의 내면을 보았고,
말씀에 삶을 걸지 않으면 신자로서의 삶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무너질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말씀에 삶을 건다고 해봐야 
사실 별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는 강사의 삶이었지만
매일 아침 1시간 정도를 확보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하루 1시간이 나를 살렸다.
죽을 것 같고 무너질 것 같고 
이대로 살다가는 말할 것 같은 때가 
무수히 많았지만,
그때에도 매일 1시간 또는 그 이상을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금주와 주일성수를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켰을 때
작은 승리를 얻었던 그 경험이
말씀에 삶을 걸 때 승리를 주실 것이 마음에 믿어졌기 때문에 
말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삶의 연장선 상에 지금의 삶이 있다.
사실 지금도 내 삶을 보면 너무 놀랍다.

신학공부하러 경기도에 올라와서 
7년간 학원 5개를 말아 먹고도 
이렇게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같은데,
교회를 개척해서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져가고 있고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서 나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숫자의 
말씀에 갈급한 분들이 은혜를 받고 있다는 이 현실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눈물 지을 때가 많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노후 대비가 전혀 되지 않는 내 삶은
노년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거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을 때 얻은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이다.
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임지실 것을 믿는다.

매일 아침 말씀을 펼칠 때마다 
사실 막막한 벽을 마주한 것 같을 때가 있다.
말씀이 쉽게 와닿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말씀의 생명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씀만이 나에게 생명이 됨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말씀에 삶을 걸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나의 삶이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