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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용비어천가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 기자
  • 송고시간 2020-08-0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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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게 한 조상들을 잊지 말아야...
뿌리의식 없이 사는 것은 돌아 갈 곳 없는 방랑자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사진제공=향촌문학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1년 전인 1445년에 완성되었다. 세종은 '용비어천가'에서 사적事績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염려해 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자세한 주해를 붙이도록 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할세.’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한글로 지은 최초의 서사시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이다. 용비어천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는 뿌리가 생명이다. 뿌리가 살아있어야 나무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싱싱한 나무는 물론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뿌리가 썩지 않아야 한다. 모든 식물은 뿌리가 깊이 박혀야 튼튼한 식물이 된다. 뿌리가 깊으면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깊은 뿌리를 갖은 식물은 가뭄이 와도 말라죽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다. 대나무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대나무는 죽순을 내밀기 시작하면 하루에 20~ 30cm씩 쑥쑥 뻗어 오르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인 나무는 뿌리와 함께 줄기도 자라지만, 대나무는 죽순이 나기 전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만 2~5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처럼 수년 간 땅속 깊숙이 내린 뿌리 때문에 장마에도 쓰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양분을 빨아올려 순식간에 높이 자란다. 대나무의 질긴 생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도, 월남 전쟁의 고엽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유일하게 싹을 틔운 식물이 바로 대나무다. 그 비밀은 땅속에서 뻗어나가는 뿌리의 견고함에 있다. 왕대나무의 땅속줄기는 길이가 무려 6km 이상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글 한편을 소개한다.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떨어져 흙속에 묻히고 다른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졌다. 흙 속 씨앗은 곧장 싹을 틔우고 자랐지만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라지 못했다. 흙속의 소나무가 나는 이처럼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빈정댔다. 바위틈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왔다. 비바람이 몰아치자 많은 나무들이 뽑히고 꺾어지고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꿋꿋했다. 흙에 있는 소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바위틈에 서 있던 소나무가 말했다. ‘내가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 알겠지?’ 쓰러진 소나무는 뿌리가 튼튼하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무성하듯 나를 있게 한 조상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조상은 바로 자기 뿌리다.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낳아준 분이 바로 제 조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지하처소종래不知何處所從來’다. 즉 제 몸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귀찮아서 조상 성묘도 안 간다는 세상이다. 성현들이 말하는 망기본忘其本이다.

조상과 자손은 뿌리와 열매의 관계다. 조상인 뿌리로 모든 영양분을 받아 마지막 열매인 자손이 탄생하는 것이다. 자손이 조상인 뿌리를 부정하면 스스로가 생명을 끊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성된 열매가 없으면 나무 의미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상의 의미 자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과 자손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자신의 조상을 알고 나의 존재가 우연한 생명이 아니라 소중하고 자랑스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대를 이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걸 인식할 때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행동도 진중해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종친宗親들과 교류하면서 화목하게 지낼 때 나의 좌표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오직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할 수 있는 교육이며 삶의 근간이다. 조상은 나의 뿌리다. 뿌리 없이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듯이 우리의 삶 자체를 조상이라고 하는 뿌리를 외면하면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자살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들만이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어 영생의 고리를 잘라내는 악업을 행한다. 삶의 원동력인 생기가 부족하거나 생기를 받지 못할 때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햇볕, 공기, 물 등과 같은 자연적 요소와 꿈, 야망,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있다. 동물은 생리적 조건만 갖춰지면 성장하고 번성하나, 영혼을 지닌 인간은 정신적·정서적 생기까지 갖춰야 살 수 있다. 여기에 집안이 번성하고 사업이 잘 되고 후손들이 건강한 것은 따지고 보면 조상의 음덕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은 하늘처럼 높은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제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오늘의 현실은 안탑깝게도 부모도 몰라보고 형제자매도 이웃사촌만도 못한 먼 친척이 되었다. 오직 내 가족만 알고 있다. 어디서 온 풍습이며 이로 인해 조상에게서 받을 벌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조상이라고 하는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 사회·국가 등도 뿌리가 깊어야 한다. 특히 역사적 뿌리가 깊어야 든든하다. 깊은 역사의 뿌리도 중요하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우리가 깊이 내려야 할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형제자매 지간은 몰론 구성원들 간의 신뢰의 뿌리, 단합의 뿌리다. 뿌리에 대한 의식이 없이 사는 것은 돌아 갈 곳이 없는 방랑자와 같다.

시인 정성수. 향촌문학회장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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