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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신뢰는 선함으로 드러난다'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9-1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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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신뢰는 선함으로 드러난다]

(창세기 45:16-28)

1. 선함이 선함을 낳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말을 들은 이집트 왕 바로가 
놀랍게 반응했다.
 

(창 45:17-18, 새번역) [17]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형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시오. 짐승들의 등에 짐을 싣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18] 그대의 부친과 가족을 내가 있는 곳으로 모시고 오게 하시오.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드릴 터이니, 그 기름진 땅에서 나는 것을 누리면서 살 수 있다고 이르시오."

이집트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바로의 이런 반응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바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을 태우고 올 수레를 여러 대 가져가라고 하고,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에 살게 해주겠다 했다. 

왜 바로는 이렇게 선하게 반응했을까?
요셉이 이집트를 살렸다는 사실을 
바로도 알았고 신하들도 모두 알았다는 사실을
이 반응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셉에 대한 바로의 선대는 
요셉이 이집트에 대해 선하게 했기 때문에 나온
당연하고도 마땅한 결과였다. 

선함이 선함을 낳은 것이다.
타인에게 최선을 다해 선하게 대하면
그 선함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2. 악함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선함

요셉에 대한 바로의 선함은 이유가 있었다.
요셉이 먼저 선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셉이 선하게 한 것은 
마땅하지도 않고 당연하지도 않아 보인다.

이집트는 요셉에게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이집트에 팔려가서 종살이를 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억울하게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힌 채 몇 년이나 살아야 했다.

이집트에 대해서 원한과 분노를 품어도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하게 보인다.
요셉은 이집트와 바로에게 선하게 하지 않아도 
아무도 욕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선대하지 않은 이집트임에도 
최선을 다해 이집트와 이집트 사람들을 선대했다. 

또한 요셉은 형들에게 선하게 대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했다.
동생을 인신매매하다니, 
인간 말종 같은 형들을 왜 선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마땅히 형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니,
심판을 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요셉은
그들을 심판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팔아 먹어 버린 형들을 선하게 대했다.

자신을 선하게 대하는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기까지 하지만,
자신을 악하게 대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신자됨은 그 때 드러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3. 억지로 선하게 해야 할까?

이렇게 '선대'에 대해 정리를 하면 매우 위험해진다.
'신자는 무조건 착해야 해.'
또는 '신자는 원수까지 용서해야 해.'
라고 율법적인 굴레를 씌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틀렸다.
율법적인 굴레가 씌워져서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한다면
선하게 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선하게 대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병들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신앙인이 도달해야 할 
중요한 목표지점은 맞지만,
그 과정에 '저절로' 또는 '자연스럽게' 도달해야 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것이 
기쁘고 충분히 감당할 만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한다면
그건 신자의 삶의 자세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4. 요셉이 선함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

그럼 왜 요셉은 자신에게 악하게 대한 
이집트와 형들조차도 선대할 수 있었을까?
그건 '신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했고,
그 관계 속에서 꿈을 통해 삶의 인도를 받았고,
결국 꿈을 통해 자신의 삶이 회복되었고 
이집트라는 거대제국을 살리고 
형제들과 아버지까지 살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태도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에게 악하게 대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악감정을 떨치고 선하게 대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온 삶으로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말만이 아닌 것이다.

5. 선함의 결과 

요셉의 선함을 결국 
요셉을 잃고 평생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갔던
야곱의 마음을 회복시켰다.

(창 45:28, 새번역)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내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니! 암, 가고말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아이를 보아야지!" 하고 이스라엘은 중얼거렸다.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깊이 회복되었던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특히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선함, 선대의 결과다.

비록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에게 악하게 대한 사람을 선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과업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결과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결과는 결국 
선함을 베푼 사람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자신의 최선으로 이집트라는 한 나라가 
망하지 않고 회복되고,
자신의 선함을 통해 형들이 회복되고
아버지도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요셉은 얼마나 마음이 벅찼을까?

자신에게 다가왔던 모든 고난을 돌아보며
그 고난의 시간들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던 것임을 알고 깊은 감사와 감격을 누렸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갖게 될 때,
사람을 선대할 수 있고
결국 아름다운 결과를 상대와 자신 모두가 누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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