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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재현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 [인천=아시아뉴스통신] 이채현 기자
  • 송고시간 2021-01-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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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태석 신부의 조건 없는 사랑을 되새기며
이재현 인천광역시 서구청장./아시아뉴스통신DB

[아시아뉴스통신=이채현 기자]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 故 이태석 신부의 조건 없는 사랑을 되새기며 2004년부터 학교・병원 설립 등 고인의 활동을 뒷받침하며 후원하고 수단어린이장학회를 이끌며 그 발자취를 걷고 있는 이재현 인천광역시 서구청장을 만나 이태석 요한 신부 선종 11주기를 맞이해 그 분에 대한 얘기를 듣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재현 인천광역시 서구청장(오른쪽)과 '울지마 톤즈' 주인공 故 이태석 요한 신부(왼쪽)./아시아뉴스통신DB

故 이태석 신부는 1962년 9월 19일 부산에서 출생해 1981년 부산경남고등학교 졸업,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 졸업, 1990년 군의관 전역,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 입회,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입학, 1994년 1월 30일 첫 서원, 1997년 이탈리아 로마 유학, 2000년 4월 종신서원, 같은해 6월 28일 부제서품 수품, 2001년 6월 24일 서울에서 사제서품 수품, 그해 11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척박한 오지마을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Tonj)를 향해 달려가 병원을 세우고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해 콜레라를 퇴치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치다가 2010년 1월 14일 선종해 '울지마 톤즈'의 눈물을 전 세계에 흘리게 했다.

Q. 이재현 청장님 안녕하십니까? 2010년 1월 14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故 이태석 요한 신부의 선종 11주기를 맞게 됐습니다. 이 신부와의 수단에서의 봉사활동 인연으로 선종하신 후 그 뒤를 밟으며 후원과 봉사를 이어가며 매년 이때면 남다른 감회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리면
 
 '울지마 톤즈' 주인공 故 이태석 요한 신부./아시아뉴스통신DB

A. 예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새해가 밝아지는 이맘때면 더욱 그리워진 분이십니다. 영화보다 더한 삶을 사셨던 신부님은 마지막 선종하신 순간까지도 사랑과 나눔을 널리 전하고 가셨습니다. 나에겐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그 분만 생각하면 큰 위안이 되는 분이십니다. 어느새 선종 11주기를 맞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신부님은 늘 내 곁에서 힘이 돼주신 분이십니다.
 
Q. 이태석 신부와의 인연을 소개한다면

 
A.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으로 재직시절 당시 51세의 나이로 가족들의 만류에도 아프리카 근무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수단 봉사활동을 나가서 신부님을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내전으로 황폐한 불모의 땅에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을 베푸신 신부님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신부님의 그 뜻을 실천하고자 저도 그때 다짐했습니다. 신부님께서 남겨주신 나눔의 가치를 많은 이들에게 다시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4년부터 학교・병원 설립 등 고인의 활동 뒷받침으로 수단 어린이 지원활동과 수단어린이장학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며 조금이나마 사랑과 나눔의 정의를 배워가며 새롭게 정립하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Q. 수단에서 이태석 신부를 직접 만나 봉사활동에 참여한 후 삶의 변화가 있다면
 
A.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인 톤즈에 간 것과 그곳에서 이태석 신부님을 만난 그 이후로 내 삶엔 분명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톤즈에 가기 전에는 목표물만 바라보고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일과 성과에만 매달린 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삶의 최우선 순위 역시 일이었지요. 그게 성공의 척도이자 삶의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에 파묻힐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늘어갔고 일과 행복의 괴리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톤즈와 신부님과의 만남이 운명처럼 이뤄졌다고 생각됩니다.
 
Q. 2003년 남수단 톤즈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소감과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이 신부를 소개하면
 
A.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의 남부 톤즈는 오랫동안 수단의 내전(內戰)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며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흩어져 황폐화된 지역이었습니다. 내가 톤즈에서 본 유일한 희망은 이태석 신부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이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하루 단 한 끼를 멀건 수수죽으로 끼니를 떼우고 손과 발이 문드러지는 나환우와 말라리아, 콜레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세웠습니다. 또한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하고 오염된 톤즈강 흙탕물을 먹는 주민들에게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제로서 그들과 어울리고 위로하며 진정한 선교의 힘을 보여줬고 의사로서 매일 200여 명이 넘는 환자를 성심성의껏 돌보며 밤이든 새벽이든 찾아오는 환자를 마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동진료도 하시고 태어나서 연필 한 자루 쥘 기회 없이 소년병 아니면 일꾼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선생님도 자처했습니다. 총과 칼을 들고 노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사는 법을 알게 하며 남수단 최초의 음악대인 ‘톤즈 브라스 밴드’를 결성해 연주를 하고 난생 처음으로 글씨를 쓰고 셈을 배우게 되고 해 덕분에 몇몇 학생은 ‘제2의 이태석’을 꿈꾸며 한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Q. 이태석 신부와의 인연에서 느낀 보람이 있다면
 
A.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셨습니다. 늘 남의 탓’ 하며 스스로 각박하게 만들었던 삶에 ‘감사’라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씨앗, 감사가 행복의 시작임을 심게 하시고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뿌듯한 건 신부님과 톤즈의 이야기가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다큐로 제작되면서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섭씨 55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서 열심히 신부님을 따라다닌 보람을 느낍니다. 당시의 모습이 담긴 자료를 보면 매번 뭉클하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처음엔 아프리카 행을 반대했던 아내와 두 아들도 당시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곤 합니다. 20년이 다 돼 가지만 내 맘속 케렌시아 1번지가 여전히 아프리카인 이유도 그러하지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면
 
A. 아프리카 햇살처럼 밝은 이태석 신부님의 미소가 유난히 그리워집니다. 곳곳에 행복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시던 故이태석 신부님의 나눔정신은 햇살처럼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저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건네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겐 큰맘 먹어야 할 수 있는 사랑과 나눔이 신부님에겐 항상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톤즈를 위해 태어난 분처럼 사제, 의사, 선생님, 음악가, 건축가, 기술자, 농부, 친구로 끊임없이 다양한 역할을 하며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놓으셨습니다.
 
저 역시 신부님을 만나고 봉사를 함께한 이후로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제 삶 곳곳에서 행복을 발견했고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 “Everything is good(모든 것이 좋다)” 신부님이 남기신 마지막 유언을 가슴에 품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진심을 담은 사랑과 나눔이 아닐까요? “Everything is good(모든 것이 좋아)” 신부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언을 되새기며 서구의 행복과 서구가 완성해나갈 가치를 더 굳건히 다져봅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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