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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남원의 샘(33) 주생면 낙동리 낙동마을 안샘

  •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 기자
  • 송고시간 2021-02-2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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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샘이 있었는데 인근에서 가장 크고 물 좋기로 소문이 나
마을 사람들은 도로개설 당시 큰샘을 없애버린 것을 무척 아쉬워해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길 19-9. 낙동마을 공동우물(1)./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리는 주생면 소재지로부터 서쪽 방향 2.5㎞ 지점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이름처럼 낙천적이고 순박한 인심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본래 남원군 남생면(南生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낙동리라 하여 주생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주생면 낙동리가 되었다.

 
낙동 마을은 고려 말기에 해주오씨와 흥성장씨(興城張氏)가 마을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는 중에 문중에서 큰 부자가 생기자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을 ‘명당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엽에는 여러 성씨들이 모여들면서 금령김씨(金寧金氏)와 경주정씨(慶州鄭氏), 전주이씨(全州李氏), 고령신씨(高靈申氏) 등이 정착하였다. 그 후 다수의 성씨가 모여 살게 되었다. ‘네 가지 즐거움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사락(四樂)골’ 또는 ‘낙동(樂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락골로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의 지형을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한 데서 연유한다. 마을 뒷산의 옥녀봉(玉女峰)에서 옥녀라는 여인이 거문고(琴)를 타면 초장동(招場洞)에서는 장단을 맞추고, 유장동(遊場洞)에서는 놀며, 노락골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마을 동편에 있는 전당에서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노는 네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고 하여 ‘사락동(四樂洞)’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넉 ‘사(四)’자를 빼고 ‘낙동(樂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리 낙동마을에는 공동우물과 안샘이 있다. 첫 번째 공동우물은 마을회관 지나 오른쪽 옛 낙동교회 근처에 있다.
 
샘의 형태는 원형으로 깊이는 290cm, 지름 75cm, 수위 190cm, 수온 18℃이다. 지표면에서 약 2.6m 깊이로 굴착하였으며 밑바닥에서부터 원형 콘크리트 관을 설치했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안길 38. 낙동마을 공동우물(2)../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두 번째 우물은 낙동안길 38번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된 공동우물로 내부는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안길 37번지 낙동마을 안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세 번째 안샘은 낙동안길 37번지 옆에 위치한 사각형 구조의 공동샘이다. 샘의 깊이는 125cm, 가로 157cm, 세로 174cm, 수위 77cm, 수온 18℃이다. 물색이 희뿌연 암물이다.
 
지표면에서 약 1m 깊이로 굴착하였는데 바닥은 암석이며 밑바닥에서부터 넓은 판석을 설치했다. 판석 한 변의 길이는 110cm, 폭 104cm, 두께는 20cm 내외로 뒤쪽 판석은 높게, 좌우 판석은 한 단을 낮게, 앞쪽 판석은 좌우보다 낮게 설치하여 층 급을 두었다.
 
앞쪽의 석재 양 끝 부분에 ‘ㄴ’자 홈을 파서 잇대어 맞추었으며 앞쪽 판석 중앙 상단에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를 설치하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낙동안길 38. 낙동마을 공동우물(3)../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네 번째 우물은 낙동안길 32번지에 있는 원형 우물로 내부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본래 마을 앞에 큰샘이 있었는데 인근에서 가장 크고 물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지금은 도로개설 등 환경이 변하면서 묻혀버렸는데 마을 사람들은 큰샘을 없애버린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남원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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