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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두 목사, '60초에 한 번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1-04-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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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60초에 한 번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20년 전에 주님은 나에게 "365일 나와 동행하자!"고 하시면서 찾아 오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고 당황이 되었습니다. "어찌 그것이 가능할까?" 그때에 저에게 있어서 365일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에녹과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시점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특별한 은총의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황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시점에만 부어지는 특별한 은사가 아니란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주기 위해서 나의 생명을 내어준 것이고,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미 그 길을 허락였느니라."

저는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주님, 그런데 저는 어찌 그게 안 되는 것일까요? 이제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 나에게도 그 길을 알려주세요." 그러자 주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24시간 쉬지 말고 나를 바라보아라!"

저는 또 당황이 되었습니다. "24시간을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주님의 그 말씀이 막연하게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어떻게 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지요?" "밥도 안 먹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하나요?" "화장실도 안가고 주님만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야 하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하루에 1시간 기도하기 그리고 하루에 7시간 기도하기에는 도전해 보았고, 하루종일 성경읽기에도 도전을 해본 적은 있지만 24시간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시간 기도하기, 하루종일 성경만 읽기도 작심삼일 더 큰 좌절감 속에서 실패에 실패만 거듭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이 저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60초에 한 번씩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떠니?"  그 순간 그것은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네. 그거라면 한 번 제가 도전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60초에 한 번씩 주님의 이름 부르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내가 시계를 보고 있는 순간에는 그것이 가능했지만 시계에서 나의 시선을 떼어놓는 순간 나는 60초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있는 나의 절망적인 모습과 대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5시간  7시간 그리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리고 몇날 몇일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뭔가에 몰두해서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인 내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제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OO시간 동안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구나! 나는 기다리고 있었단다. 네가 다시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다시 또 내 이름을 부르기를..."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다시 눈물을 흘리며 "주님~ 죄송해요. 내가 이렇게 못난 자예요. 다시 시작할테니 다시 또 용기를 주세요." 하며 주님의 이름 부르기를 시작했고 그때마다 주님 역시 환한 미소로 내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내 감정에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주님이 오랫동안 침묵하며 응답하지 않으시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너무도 실망하여 비뚤어진 마음으로 주님과의 약속은 생각나지만 입술을 꼭 다물고 일부러 주님의 이름 부르기를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나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그곳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1년이 가고, 3년이 가고 7년 정도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하루가 주님으로 꽉 채워진 날들이 점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365일이 주님으로 꽉 채워진 그 황홀한 날도 경험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365일 주님과 동행하는 이 놀라운 은총은 그냥 막연한 신비가 아니고 너무나도 구체적인 삶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알게 되었습니다. "맞구나! 365일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어느 특정한 시점에만 허락되어지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히 허락된 주님의 귀한 선물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래서 저는 이 삶을 가족들에게도 권하기 시작했고, 교인들에게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반신반의 하며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며 거절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감사하게도 제 말을 신뢰해 주고 과감하게 도전을 시작한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어김없이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삶에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저에게 하소연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주님이 내게 늘 그러셨던 것처럼 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들의 문제를 친절히 풀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19년간 이 삶에 도전하며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주님은 나에게 그 실패와 좌절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들을 허락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알려준 지혜와 지식의 말씀중에 최고의 말씀은 <십자가>였습니다. 제가 주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며 주님과 제대로 동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 생각>, <내 감정>, <내 지식>, <내 경험> 때문이라는 것을 주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결국은 <오만한 나의 자아>가 문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채 나를 쫓아야 하느니라."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는 나의 오만한 마음 때문이었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역시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님이 알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사실은 몰랐던 것)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 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나의 십자가를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해 주면 또 그것을 거부하며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만한 나의 자아> 때문이었습니다.

2002년 6월부터 주님은 나의 이 오만한 자아 때문에 본인이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씀이 있기 전에는 주님이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나의 자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나의 죄가 흰눈처럼 깨끗해지던 그 날 나의 자아도 이미 주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채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날 제가 다시 만난 <완전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저는 순간 순간 이 완전한 복음을 잊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속아 다시 또 깊은 절망과 좌절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다시 또 제게 다가와 그 늪에서 나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늘 "나의 영원한 복음을 잊어버리지 말고 지켜 내 가슴에 간직하라. 그리하면 그 복음이 또한 너를 지켜 줄 것이니라."

그래서 그날부터 그 복음을 날마다 나를 향해서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6장과 갈라디아서 2장 2절은  내가 다시 또 절망의 늪에 빠질 때마다 나를 그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생명줄과 같은 복음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가 이미 죽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이 놈은 또 뭐지?"  그러나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생각이나 감정을 믿지 말고 나의 말을 굳게 잡아 일어나라!" 그리고 로마서 7장의 말씀도 주님이 친히 제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20)

저는 비로소 그 놈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완전한 복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놈음 내가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이 죄는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그 죄들>이 아니라 악한 놈이 내 안에서 나를 속이며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깔아놓은 선로, 일종의 통신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그 놈을 발견하는 즉시 다시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가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또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완전한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내게도 완전한 나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13년째 십자가의 전사들을 세우는 <십자가의 도 임파테이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완전한 복음을 붙잡지 못하고 깊은 늪에서 허우적 대는 수많은 형제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게 허우적 대는 이유는 그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악한 마귀가 그들을 여전히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전사들은 그 악한 영의 궤계를 직시하고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영적인 싸움을 수행해 나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삶은 <60초에 한 번 주님의 이름 부르기>를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일에 동참해보지 않으시렵니까?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