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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미련한 사람을 대하는 지혜'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1-06-20 05:00
  • 뉴스홈 > 종교
말씀의빛교회 운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미련한 사람을 대하는 지혜]

(잠언 26:1-16) 


1. 미련한 사람이 잠언을 말하다

세상에는 미련한 사람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미련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미련한 사람이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큰 문제다.


미련한 사람이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서 
잠언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잠 26:7, 9, 새번역) 「7」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저는 사람의 다리처럼 힘이 없다. 「9」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술 취한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다.

미련한 사람이 잠언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그가 가르치는 위치나 어른의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미련한 사람이 그 위치에서 잠언을 말하면
술 취한 사람이 손에 가시나무를 든 것과 같다.

듣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심하면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다. 

잠언을 말하는 사람, 
즉 가르치거나 설교하거나 강의를 하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일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세상이다.
혹시 내가 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은 아닌지 잘 살피고 분별해야 한다.

2. 미련한 사람보다 더 심각한 사람

미련한 사람보다 더 심각하게 미련한 사람이 있다.

(잠 26:12, 새번역) 너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나,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이다.
왜 그럴까?

참 지혜는 지혜에 대한 목마름을 계속 가지게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 지혜를 얻고 싶어한다.
그러니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미련한 사람보다 해악이 큰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지혜로운 줄 아니까
계속 누군가를 가르칠 것이고 
그 가르침은 미련한 가르침이 되어 
듣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지 못하고 
미련한 사람만 계속 양산하게 된다.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이요,
지혜로운 척 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척 할 필요가 없고 
스스로 지혜 있다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사람, 
지혜로운 척 하는 사람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잠언 저자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사람보다 
미련한 사람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대놓고 미련한 사람은 
자신이 미련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고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 생각하기 때문에
고쳐질 가능성이 없다. 

그런 사람의 가르침이나 설교나 강의를 듣는 것은
앞으로도 지혜로워질 가능성이 없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니
그보다 더 황당하고 헛된 일은 없을 것이다.

3. 미련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다양한 종류의 미련한 사람이 분명 존재하는데
미련한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주 중요한 대응법이 있다. 

(잠 26:5, 새번역) 미련한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는 같은 말로 대응하여 주어라. 그가 지혜로운 체할까 두렵다.

미련한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할 때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돼지가 진주를 받으면 자신이 진주를 받을 만하다고 오해한다.

즉 미련한 사람에게 지혜로운 말로 대응하면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니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은 말에는
어리석은 말로 대응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언제나 지혜로운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다.
어리석음을 분별해서 어리석은 말에는 어리석음으로 대응하는 것이
미련한 사람을 대하는 지혜다.

언제나 진지하게 '옳은 말'이나 '정답'만을 말하는 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다.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들은 마음이 없거나 
들을 인격 자체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리석게 보이는 말을 하는 것이 지혜다.

4. 게으른 사람

심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자주 본다.
'게으른 사람'이다.

(잠 26:16, 새번역)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게으른 사람이 왜 심각할까?
재치 있게 대답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게으른 사람'은 주로 sns에서 드러난다. 
sns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려면 
기본적으로 부지런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해서 쓴 글에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댓글만 열심히 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게으른 사람'이다.

열심히 댓글을 다니까 스스로는 부지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지독한 게으름이다.
자신이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누군가의 사유에 기대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유에 기대었다면 
그 사유에 도움을 얻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사유에 대해 충조평판 하면서 
스스로 사유해서 그 글을 쓴 사람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악의 미련함이요 게으름이다.

스스로 사유해서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도움을 받고 겸손하게 감사의 표현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게으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말과 글과 삶에 대해서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자신이 미련한 사람보다 심각한 '게으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5. 나는?

목사가 되고 나니 목사님들을 만날 때가 많다.
그런데 좋은 목사님들을 만나면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다.
서로에게 '충조평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자신의 삶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조언을 구할 때도 있다.

분명 훌륭한 목사님이다.
설교를 나보다 잘 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나보다 목사된 지 훨씬 오래 되기도 하셨다.
그런데 오히려 나에게 조언을 구하신다. 
나의 삶에 대해 '충조평판'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조언을 구하면 최선을 다해 조언을 주신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나도 상대방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가장 단호하게 말하는 편이라서 
부끄럽고 죄송할 때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목사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은 피하는 편이다.
혹시 어쩔 수 없이 만날 경우가 있는데
그 자리에 있기가 좀 괴롭다.

빨리 그 시간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이 
나에 대한 충조평판이거나 
사회나 정치에 대한 충조평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데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고역이다.

그래서 무섭다.
나는 목사로서 그리고 설교자로서 
주 1회는 반드시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한다는 것은 '잠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의 설교가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아닐까 무섭다.

목사로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담'을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기는데 
혹시 내가 '충조평판'만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서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목사로 살아가면서 미련한 사람을 넘어서 게으른 사람이 된다면
그보다 비참한 삶이 어디 있을까 싶다.

상황에 맞지도 않는 되지도 않은 잠언을 
언제나 중얼거리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길,
언제나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말만 하는 
'게으른 사람'이 되지 않길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그래서 내가 거의 목숨을 거는 일이 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다.

말씀의 거울이 나를 비추어 
내 속에 있는 미련하고 게으른 요소를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길,
그래서 미련한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