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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net 대표 이승제 목사, '우리를 향하신 생각과 마음'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1-09-26 05:00
  • 뉴스홈 > 종교
가까운교회 이승제 담임목사.(사진제공=가까운교회)

출 20:18-26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생각과 마음 1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앞에 서자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를 보며 떨게 된다. 하나님이 무서워지며 이스라엘은 떨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죽을 것같았기에 모세에게 자신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알려달라하게 되었다.

이에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그냥 겁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신의 권위를 찾으시려 바둥거리시는 분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이미 영광이 가득하시며, 온 우주의 창조자로 누구의 권위도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왜 저렇게 요란하고 무섭게 나타나시는가?


첫째, 거룩의 완전체이신 하나님이 죄의 피로 물든 더럽혀진 이땅에 나타나실때 하나님의 거룩과 사망의 큰 차이가 저러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게 다는 생각이든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듯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근본과 차원이 다른 거룩성의 현현이라 볼 수 있다.

둘째, 모세가 직접 말을 한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생각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높아지는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지 않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시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 좋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결코 이기적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늘 항상 우리의 생명과 복을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믿음이란 바로 이 싸움이다. 하나님을 선하신 왕으로 믿느냐? 종교의 대상이냐?의 싸움이다. 

우리가 하나님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분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바로 이시간에 말씀을 통해 생명을 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생명이요, 단번에 받으면서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생각과 마음 2

하나님의 첫 음성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늘로 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의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하지 말라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분부셨다. 
왜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을까?

모든 종교는 신상이있다. 그래야 신이 더 거룩해 보이고 뭔가 이 세상과 달라보이는 권위가 있어 보인다. 앞서 묵상한 것처럼 하나님은 더 거룩한 척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신상이 필요없음은 인간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한 신성은 죄로 사망에 이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복원되는 것이지, 금은동 나무따위로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필요없으시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 생명복구, 형상회복에 마음이 있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생각과 마음 3

하지 말아야 할 것 뿐아니라 해야할 것도 있다. 
“토단을 쌓고 그의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죄로 물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망을 동물들에게 전가하는 제사였다. 어쩌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최소한의 방법, 유일한 길을 알려 주신 것이다. 이 피의 제사는 불완전하였고,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되게 될 것이다. 

제사의 목적은 우리의 죄의 용서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결코 종교행위에 목적을 두지 않으신다. 
화려하지 않은 흙으로 만든 구별된 제단은 필요하다. 제단위에 사용될 제물과 제사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

구약시대의 복은 건강과 의식주의 부족함이 없음과 자녀들과 같은 현실과 밀첩한 것이었다. 
건강장수는 지금 이시대에도 복이다. 생명의 연수는 늘었지만, 요양원과 중환자실에서 사는 것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길 원하신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의식주를 이웃까지 돌봄만큼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더 늘어 더 복을 받게 하시길 원하신다. 
자녀들이 단순히 많은 것이 복이 아니라, 화목한 관계로 나아가도록 축복하신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과 마음은 한 마디로 축복이다. 
축복은 충만한 존재가 부족한 존재에게 베풀때 사용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감이 바로 축복이고 또한 축복을 받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잘못된 축복관으로 인해 그동안 하나님의 복을 너무 멀리하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올바른 축복관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를 향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짐스러워서는 안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때는 힘들지만 계속하게 된다. 보람있고 의미있고 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는 것이 그것만 못하다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된다. 

오늘도 즐거이 주님을 따르고 주님앞에 나아간다. 
이런 믿음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주님, 오늘도 당신의 축복이 저와 가정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