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뉴스홈 전체기사 정치 산업ㆍ경제 사회 국제
스포츠 전국 연예·문화 종교 인터뷰 TV

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 '너의 삶은 평생 광야일 것이라!'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1-12-02 05:00
  • 뉴스홈 > 종교
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너의 삶은 평생 광야일 것이라!"

오래전에 제가 참으로 존경하던 OO목사님께서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던 중에 이렇게 대언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너는 평생이 광야다!” 그 당시 그 기도를 제 아내도 옆에서 함께 들었는데, 제 아내와 저는 함께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동안 저는 그 충격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과 상관이 없는 <가나안>에 대한 환상이 저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주님은 저를 위로하시며 저를 새롭게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진짜 가나안이 무엇인지를 저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저에게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짜 가나안은 "광야에서 벗아난 그곳"이 아니라 비록 그곳이 영원한 광야일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는 바로 그곳”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주님과 동행하게 된 저에게 있어서 메마른 광야 역시 더 이상 비참하고 추한 곳이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황홀한 침실’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막이었던 성서의 광야는 <치열하게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하셨던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바로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유혹하는 자 사탄은 성령충만한 주님을 집요하게 공격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눅 4:3),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5-7)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곳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려 증명해 보이거라.”(눅 4:9)

성령충만하신 주님은 사탄의 유혹에서 물리치고 사막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치열한 영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갈릴리도 역시 주님에게는 여전히 사막이었습니다. 변함없이 사탄은 주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주님을 기다렸으며, 만일 주님이 철저하게 아버지 안에 거하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이 가차 없이 가해질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 역시 치열한 광야에서 평생을 치열하게 전투하며 보내셔야 했습니다.


치열한 전투를 앞두고 있었던 주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모으셨고, 제자들과 함께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며 능동적으로 영적인 전투를 수행했으며 또한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천국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삶은 평생이 광야였지만, 육신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아버지와 동행했던 주님에게서는 그 광야도 역시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천국은 육신의 삶이 끝나야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주님 안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지금,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여기에서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주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광야도 ‘천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국을 보지 못하던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물론 저는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처소’를 믿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제가 앞으로 가게 될 영원한 처소를 믿는 것은 그것이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내 안에서 여전히 말씀하시고 나의 눈을 열어 그것을 보게 하시는 주님을 흔들림없이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0장과 21장에서 언급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도 믿습니다. 이것을 제가 믿는 이유 역시 사도 요한이 언급한 ‘성경 말씀’이기 때문이만이 아니라 이것 역시 지금도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며 나의 눈과 귀를 열어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그 주님의 ‘실재’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실재적 관심은 그것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영원한 처소를 내가 믿고,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믿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저의 주된 관심이 아닙니다. 저의 주된 관심이 지금 여기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주님’이십니다. 이 분이 저에게도 또 날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렇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 또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가 오늘도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과 함께 이렇게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천국의 황홀한 삶을 날마다 우리와도 함께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0-11)

그렇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펼쳐지는 주님의 순결한 사랑이 천국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며 주님의 말씀을 지켜내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아버지 안에 거하게 될 때 우리들도 역시 아버지와 동행했던 주님이 누리셨던 그 천국의 기쁨을 날마다 더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우리들의 주님 역시 평생을 광야와 같은 이 땅에 사셨지만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분이 거니시던 모든 곳도 역시 언제나 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보리에서 완성된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로 이 영원한 이 천국의 황홀함을 오늘도 우리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변함없이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0-21)

주님과 함께 날마다 메마른 사막도 기쁨으로 건너가는 십자가의 길은 지금 여기에서 영원으로 계속 이어지는 <천국의 삶>입니다. 저 역시 이 황홀한 삶을 여러분과 함께 날마다 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저의 삶이 광야라고 할지라도 저는 행복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사 35:1-2)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