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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 '다시 읽는 요한계시록(32)'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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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감리교회 김진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다시 읽는 요한계시록 - 32

묵상제목] 백보좌 심판과 생명책에 관하여

묵상본문] 요한계시록 20:11-15

1. 우리는 드디어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 앞에 서게 됩니다.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는 요한의 고백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가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2. 요한이 주님의 보좌 앞에서 본 책은 두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한 종류의 책은 불신자들을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는 "심판의 책"이고 또 한 종류의 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라는 것입니다. 

3) 하루는 주님께서 칠십명의 전도대를 세우고 둘씩 짝을 지어 각 동네와 각지역으로 파송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 순종하여 각 지역으로 파송된 칠십인은 각자의 현장에서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임마누엘 되신 주님과 동행하며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4)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돌아와 기뻐하며 주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의 보고를 들으며 주님께서도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그들과 함께 기뻐하면서도 결코 빠뜨리지 않은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5) 밧모섬의 요한은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 요한계시록2장과 3장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는 주님의 일곱가지 선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함께 그들만 알 수 있는 새 이름이 새겨진 흰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함께 새벽별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6) 그들은 흰 옷을 입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결코 생명책에서 지우시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주님께서 친히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고,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7) 우리들이 이 땅에서 주님께 순종하면서 날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며 귀신을 제압하고 사탄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일은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들이 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이 곧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8)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백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백보좌 앞에 있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 이것은 그 앞에 서게 될 모든 인류에게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일 것입니다.

9) 물론,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다시 태어난 우리들은 그 심판의 책에 기록된 자들이 아니라 생명의 책에 기록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 이렇게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말씀 앞에서 참으로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자인가?" "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한가?" 우리들은 매 순간 이 질문 앞에서 매순간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1)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제자들을 앞에 두고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 질문 앞에서도 언제나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 "나는 정말로 매사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가?" 우리는 정말로 정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할 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하며 심지어는 심한 저개심과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3) 어떤이는 이렇게 항변하며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나요?" "세상에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완전히 행하는 자들이 있을까요?" "당신,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14) 이렇게 나에게 도전하고 항의 하는 자들에게 저는 빌라도 앞에 섰던 주님처럼 그냥 침묵을 지킬 것입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에게는 어떤 대답도 대답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있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15)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읽는 이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성도'라고 불리는 교회 안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분명히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16)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들은 이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할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가?" "나는 진정, 거듭난 자인가?" "나의 이름이 분명히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럿다면 나는 그것을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

17) 참으로 불행한 일은 이 질문 앞에 불안해 하는 자들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그랬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날마다 교회에 다녔고, 그렇게 목사가 되기도 했지만, 나도 역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기까지는 그랬습니다.

18) 나도 역시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도 역시 늘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몰랐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  그러나 2002년 6월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한 시도 이 확신이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내가 죽어 그리스도로 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중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우리들의 어떤 행위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21)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4절에서 그들을 향해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우리들은 절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들을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에 비유한 것입니다. 

22) 그 어떤 포도나무의 가지도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그냥 붙어있는 것 그 이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만을 가지고는 그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23)  포도나무의 가지는 끊임없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포도당과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끊임없이 나무와 인격적 교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포도나무 안에 거하는 포도나무 가지의 모습일 것입니다. 만일 그리하지 못하면 그 가지는 열매없이 말라버리게 될 것이고 결국은 불타는 아궁이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24)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끊임없이 인격적인 교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어지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채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교통하는 자들에게는 그들 안에 있는 주님도 날마다 더 분명해지게 될 것입니다.

25) 나무의 가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오직 그 나무 안에 거하기 위해서 오직 그 나무와 교통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26) 백보좌 심판의 이야기 역시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요한은 백보좌 심판의 이야기 속에서 두 종류의 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각 사람을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하기 위한 심판의 책"이고 또 하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입니다. 우리들은 심판의 책에 대해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름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27) 그러나 문제는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자들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주님을 자신의 삶에 진정한 왕으로 초청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또 하나는 주님을 자신의 삶에 왕으로 초청한 적은 있으나 지금 현재 왕의 신부로서 왕의 신부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 이 둘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28)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영생을 거듭난다는 의미의 구원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가면서 날마다 누리는 <구원의 확신>의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자들은 이 확신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그 안에 날마다 승리의 기쁨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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