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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감동의 시간을 추억하며'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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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감동의 시간을 추억하며

지난 날을 돌아 보면서 생각한다. 무엇이 나에게 가장  희열과 감동을 주었던가? 중학교 3학년, 고입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까운 전도관에서 울리는 새벽 찬송 차임 벨 소리에 깨어나 기도했던 추억이다. 잠깐의 기도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기도로 기억된다. 그때가 잊혀지지 않은 것은 그 시간 나는 몹시 울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의료 선교사가 되고 싶었고,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내 꿈은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내 눈이 적록 색맹인 것이 밝혀진 후, 나는 신학 공부로 진로를 바꾸어야 했다. 

그후 많은 시간 내 삶은 방황과 외도의 길을 걸어왔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이 길로 인도해 주신 까닭은, 그때 그 새벽 시간, 눈물의 기도를 하늘의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날까지 나를 불쌍히 여기신 까닭이라 믿는다. 그때 눈물은 나만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지 않으셨을까?

대학 생활은 나의 삶에 가장 어두운 방황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선교 기관으로 인도하셨고, 거기서 성경을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하셨다.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가마니 위에 앉아 성경을 듣고 배우는 즐거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땀이 얼굴에서 비오듯이 흘러 내렸지만, 더위를 잊으면서 성경을 배우고, 설교에 귀를 기울였던 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배우고 암송했던 성경이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대부분 머리 속에 남아서, 설교 시간, 강의 시간에 흘러 나온다. 지금 성경을 암송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성경 암송이 중요한 까닭은, 어려울 때, 그 말씀을 암송하고 음미함으로 그 어려움을 넘어갈 수 있기때문이다. 마치 창과 칼을 지니고 있다가 대적이 나타나면, 그것 사용하는 것과 같다.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뜻 아닌가?

미국 와서 목회 하면서 신학 공부를 했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밤늦게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반 운전 후에 집에 오면, 대개 밤 11시 반이 넘는다. 집에는 아내와 강아지가 나를 반겨 주었다. 그 강아지 치아와는 한국에서 데려온 강아지인데, 사람 IQ로 치면 100은 넘을 것 같다. 얼마나 영리하고, 예민한지 잊을 수 없다. 집에 오면 그래도 피곤이 풀리고 안식할 수 있었다.

밤 늦게 도착해서 그 다음 날 새벽 기도회를 준비하러 교회를 가야 했다.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었지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그리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가르치는 시간이 있어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날까지 나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내 책상 옆 벽에는 Drew 대학원 졸업식 때 사진이 걸려 있다.  졸업식에 참석했던 목사님께서 그때 찍은 사진이라고 주신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난다. 목회하면서 받은 학위라서 더 귀하게 여겨지고, 하나님이 내려 주신 큰 선물인 것을 알아, 볼 때마다 졸업식의 감동이 느껴진다. 하나님은 겨우 겨우 따라가던 나에게 정말 귀한 선물을 내려 주셨다.

돌이켜 생각하면, 멀리 중학교 3학년 때, 기도했던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 먼 길, 험한 길을 지나서도 그런 영광을 맛보게 해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하나님이 참으로 나를 선대해주셨다는 생각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낄 때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내 삶 속에는 항상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하고,  가르치는 사역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있어서 감사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다면 진작 은퇴했어야할 것인데, 미국에는 나이를 따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그래도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짓 없이 사는 것과, 진실과 순수를 좇아 사는 것이다. 이 순수함은 대학교 때 읽었던 쉬바이쳐 박사의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분도 청소년 시절의 순수함을 지켜 살기로 결심했고, 그 일생 그 이상vision을 좇아 살아왔다고 고백한 글이었다. 이 순수함을 지켜 살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틀림없다. 

대학시절 보았던 풀잎에 맺힌 이슬의 사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수년 전 꿈 속에서는 물고기가 유유히 다니는 맑은 물을 본 적이 있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그 맑은 물처럼, 이슬처럼 살고 싶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