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뉴스홈 전체기사 정치 산업ㆍ경제 사회 국제
스포츠 전국 연예·문화 종교 인터뷰 TV

하늘사랑교회 김규태 목사, '하나님 아들의 신적 능력과 권세'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1-20 05:00
  • 뉴스홈 > 종교
하늘사랑교회 담임 김규태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누가복음 5:12-26
하나님 아들의 신적 능력과 권세

1.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이 나병 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다음과 같이 구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나병이 곧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사회적으로 격리를 해제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안내하셨습니다.

고침 받는 나병환자 이야기가 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경계를 극복한 믿음의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극심한 피부병 환자를 총칭한 말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 13:45-46).”


나병환자는 스스로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침으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혼자 진영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규례는 나병으로부터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환자 당사자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 있는 동안만 늘 부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병이 치유된다면 그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사회가 정한 경계선을 어기고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원보다 예수님의 소원을 앞세웠습니다. 이미 나병환자가 경계선을 넘어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소원이 무엇인지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사회적 경계선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사회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경계선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경계선들이 표출되고, 충돌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존재하고,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평안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 경계선은 상처이고, 고립이며, 죽음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한다면 누군가를 회복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한 중풍병자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온 친구들은 수많은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갈 길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마치 위급한 환자를 수송하던 구급차가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발이 묶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했다고 기록해 놓았지만, 조금씩 양보하여 길을 열어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날 모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치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친구의 치유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타적인 사람들은 이기심의 장애를 극복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물론 비용이 좀 들겠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들이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든 친구를 침상 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을 때, 예수님은 흙먼지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병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규율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의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규율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 감시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감시자들로부터 신성모독죄라는 구실을 제공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는 죄를 사해줄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죄 사함이 더 어렵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이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그 성사여부를 즉각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더 어려운 일을 행하심으로 더 쉬운 일도 행하실 수 있음을 감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치유를 선언해 주심으로, 그분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치유의 손과 접촉하게 되고, 치유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던 중풍병자와 이타적인 그의 친구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선언을 듣게 되고, 치유의 선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묶어둡니다. 그 상처와 아픔이 경계선 안에 있을 때에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러한 것들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눅 7:22).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26절)”는 사람들의 고백에서 “오늘”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때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저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2. 오늘의 기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제가 주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