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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믿음이 없다면 도움을 구하라!'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5-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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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믿음이 없다면 도움을 구하라
(막 9:24)

"제가 믿음이 부족합니다" 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내뱉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지로 스스로의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하고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을 동경하며 주변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존경하며 자신의 믿음도 그만큼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짐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성장은 결코 쉽지 않음을 이내 실감하고 오늘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한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보며 또 다시 믿음이 부족함을 반복해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고백은 반드시 믿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단순히 넋두리를 늘어놓는 듯 한 이야기를 고백이라고 착각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믿음의 고백을 이렇게만 단정 짓는다면 솔직히 여기에 해당 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고백해야하는 순간에 또다시 자신의 믿음의 연약함과 씨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통해서 믿음의 고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말씀하시고는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병든 아들과 주님 앞에 선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고쳐 달라는 자신의 간절한 바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간곡한 바램에는 스스로의 연약함이 깊이 묻혀 있었습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막 9:22)

이 간절한 요구가 주님께 드리는 병든 아이 아버지의 간절한 고백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곧바로 이렇게 답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는 말은 스스로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먼저 솔직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자신의 단순히 넋두리에 불과한 이야기로 끝나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주님은 그의 이야기가 믿음의 고백으로 드려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쩌면 제자들 역시 이것을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병든 아이를 향해서 자신들의 강한 믿음으로 선포를 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에 주님께 파송을 받으며 놀라운 일을 행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해결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막 6:12‭-‬13)

그러나 그들이 과거 믿음의 경험으로 아이의 병을 고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하여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때 제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긴 확신은 믿음이 아닌 과거 경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강한 확신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그저 할 수 있으리라는 강한 자신감 뿐 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여기서 아이의 아버지가 쏟아놓은 이야기가 믿음의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은 하실 수 있음을 믿나이다"라고 바꾸어 이야기해야 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가 주님이 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 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아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믿음의 고백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깨닫게 하신 것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무엇인가 할 수 있으시거든" 이라는 넋두리를 늘어놓은 아이의 아버지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라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곧바로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을 이야기 한다면 어쩌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너무도 급한 나머지 우선 인정하고 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더 이상 하소연이 아닌 믿음의 고백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입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 9:24)

그는 소리쳐 이야기 하기를 "주님은 모든것을 하실 수 있음을 내가 믿나이다" 가 아닙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것을 도와주소서" 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동시에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방적인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불가능이 없으신 주님만 인정해 드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저 반드시 아들이 나을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에 의한 의지와 확신도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확신을 잃지 않고 더 견고히 신뢰하기위하여 몸부림치는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구하는 것은 전혀 없는것을 받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연약하기에 굳건해지기를 원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는 주님의 말씀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생각을 바꾸라는 의미이기 전에 이미 받고 가지고있는 믿음을 꺼내고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을 향한 믿음이 전혀 없었다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는 주님의 말씀에 사과부터 드리고 주님이 하실 수 있다고 믿고 싶음을 이야기 하거나 만일 고쳐 주시면 오늘부터 믿겠다고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믿음을 꺼내고 먼저 연약하지만 믿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 연약함을 강하고 담대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하며 도와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이처럼 믿음을 구하는 것은 단지 없는 믿음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미 주셨기에 있습니다.

다만, 없어보이고 희미하게 보이며 연약해 보일 뿐 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믿음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것을 믿음의 고백으로 받으십니다.

또한 먼저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신 주님을 찬양 할 수 있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 9:24)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