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뉴스통신

뉴스홈 전체기사 정치 산업ㆍ경제 사회 국제
스포츠 전국 연예·문화 종교 인터뷰 TV

청주 제자순복음교회 강임명 목사, '선을 넘어야 하는 것!'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5-24 08:24
  • 뉴스홈 > 종교
청주 제자순복음교회 강임명 목사.(사진제공=제자순복음교회)

권투 시합을 할 때에 벨트 아래를 공격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남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다툴 수는 있지만, 그때에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상대의 치명적인 연약함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싸울 순 있지만, ‘그래 헤어지자.’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업셋되었다고 선을 넘은 말이 정당화 될 순 없다. 나중에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없었던 상처로 할 순 없다. 선을 넘은 행동과 말로 인한 상처의 회복은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회복이 되었다 할지라도 상처의 흔적은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선을 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에 조심하고 경계하고 또 주의해야만 한다.

반대로 꼭 선을 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두려움의 선, 의심의 선, 걱정과 염려의 선, 뭐 이런 선은 넘어야 한다. 성실하게 살면서 쌓은 명성과 자리와 권위를 한 순간에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숨겨 왔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마침내 두려움의 선을 넘었다. 그는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모시고 장례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냈다. 숨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낼 때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지만, 그 순간에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믿음이 있었고, 예수님에게 모든 초점 집중되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과 상황과 자신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마음의 중심이 가면, 길과 진리와 생명의 예수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희생과 대가를 예측하고 두려워 그 선을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에게 시선을 집중하면 다른 모든 것보다 그분이 크게 보이고,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아웃포커싱 되어 흐려지니, 두려움의 선을 넘을 수 있다. 그 두려움의 선을 넘고 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선을 넘는다. 그리고 뒤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간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두려움의 선을 넘어가니, 그 길을 따라 가는 이들이 하나, 둘, 점점 더 늘어나고 계속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게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38~39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