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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전화위복'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09-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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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전화위복(轉禍爲福) ♧

    청명한 가을 하늘이 하얀 구름 조각들과 검은 구름 조각들을 어디론가 흘러 보내고 있는 광경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떨구고 내려다 본 땅바닥에는 그렇게 크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금세 그 그림자의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파란 하늘은 눈짓한다.


    그랬다. 조그마한 구름 한 점이 머리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우리 인생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길목에는 여기저기 저렇게 작은 구름 조각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때로는 그 작은 구름 조각들이 우리를 절망 속에 빠뜨리기도 하며 큰 혼란의 늪에 밀어 넣어 허우적대게 하기도 한다.

    너무 힘들고 지쳐 주저앉아 버릴 때도 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포기해 버릴 정도로 허리를 펼 수 없을 때도 있다. 습관적으로 기도의 무릎을 꿇어 인생의 한계 앞에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기가 일쑤다. 그럴 때마다 우리 주님은 놀랍게도 그 구름을 단비로 변화시켜 상황을 호전시켜 주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1812년 3월, 인도의 세람포르에 큰불이 났다. 그때 윌리엄 케리와 그의 동료들이 애써 수고해온 모든 번역본들이 순식간에 검은 재로 변하게 되었다. 몇 년 동안이나 수집해온 자료들과 탈고를 목전에 둔 원고들이 다 타버렸으니 그 피해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원고들을 집필하기 위한 모든 재료들과 기계들도 다 불타 버렸다. 그때의 상황을 케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동안 피땀 흘려 노력해온 모든 원고와 자료들, 각종 사전류와 서적들이 다 사라졌다. 재산 손실은 두말할 여지가 없고 수고의 열매는 물거품이 되었다. 앞으로 원고들을 다시 재작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사실 그들은 인도어 성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한 2권의 구약성경, 산스크리트어 고급 사전, 벵갈어 사전, 카나레스 신약성경 등의 원고들을 모두 잃은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폐지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케리와 그와 함께한 동료들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다.

    장차 인도를 복음화시킬 하나님의 시작이었고, 인도 국민들의 국가관을 변화시켜 세계 속으로 뻗어가게 할 국력의 기반이었고 근거였기에 그랬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의 상황에 부딪혀 포기를 넘어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광야의 이스라엘을 재현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케리와 그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역경을 통해 무언가 더 좋은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저앉지도 않았고 포기하거나 절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제히 기도에 몰입했고 재기를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의 화재로 인해 영국의 교회들과 성도들이 선교에 대한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고, 그와 같은 성경 번역 사업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 곳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려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들었다.

    결국 화재 이전의 미미했던 정황과는 달리 화재 이후의 절망 상태에서 꿇은 무릎에 일어난 응답의 밀물은 성경 번역과 선교 사업을 위한 자원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는 기적의 한 사례다. 케리와 그 동료들의 최선은 제 자리, 제 역할, 제 사명의 중심을 붙들고 절망의 현실 앞에 흔들림 없이 오롯이 기도에 매진한 것이다.

    결실은 이윽고, 드디어, 기어코, 종국에는, 등의 수식 구를 동반한다. 이러한  수식 구들의 뉘앙스는 극복과 인내의 긴 여정이 암시되고 있다. 물론 실패라는 극단적인 정황도 함축되어 절망의 뉘앙스를 배제하지 않는다. 가을의 황금빛 들녘이 어찌 쉬이 올 수 있겠는가? 강한 비바람과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극복한 이윽고, 기어코, 드디어, 종국의 결실기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의 비굴한 추태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의 반열에서 순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오심 이후였음을 꼭 기억하자.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앙의 선조들 중에도 신약의 순교에 버금가는 믿음을 지킨 사례는 많다. 그 역시 언약 계승의 메시야 대망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단 6장)의 타협 없는 신앙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부활 신앙이 한 사례이다(단 3:15~18). 굶주린 사자굴과 풀무불앞에서도 당당했던 순교적 신앙이 구약 성도의 절정이었다.

    그렇다. 구름은 청명한 가을 하늘의 낭만일 수도 있고 여름날의 폭풍우를 몰고 올 먹구름일 수도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내려 만물을 숨 쉬게 하는 생명력일 수도 있고 폭우로 홍수를 일으켜 재난의 천재지변일 수도 있다. 단비는 기다림으로 준비된 자들에게 신비한 생명 줄이 되겠으나 홍수는 예기치 못한 우매함의 재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양자 모두 우리 지구촌 인생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은총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질서다. 바다의 섭리적 질서를 잔잔한 호수처럼 꿈꾸는 어리석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우리 지구촌 정황이 늘 그러기를 바람은 인생들의 안일 무사주의의 발상일 뿐이다.

    전도자 솔로몬은 우리 지구촌의 때가 긍정과 부정의 현상으로 섭리되고 있으되 이 모두 지구촌을 유지 보존 발전시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인생들에게 배우고 체득하게 하여 그 본분에 신실하게 하신다는 점을 피력했다(전 3장, 12장). 그리고 바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에서 궁극적 구원을 바라보았다(롬 8:2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17~20)

    전화위복(轉禍爲福)은 피조물이 대망하는 바요(롬 8:21), 궁극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관여적 개입이요, 구속 역사를 가이드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사적(宣敎史的) 복음이다. 위 성경 본문 인용에서 피조물은 그대를 주시하고 있다. 지구촌의 주인공은 피조물이 아니라 바로 그대임을 잊지 말자. 위 이야기 속의 전화위복도 영혼 구령(救靈)에 있음도 명심하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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