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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악인이 형통할 수 있는가?'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11-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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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악인이 형통할 수 있는가?
(잠 24:1‭)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만일 악한 사람이 형통한 모습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그 속에서 부러운 마음이 드십니까? 아니면 화가 치밀어 오르십니까?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움과 동시에 화가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이에 대하여 부러운 것은 형통함 때문이고, 화가 나는 것은 그 대상이 악인이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악한 사람이 저리도 형통 할 수 있는것인가?

그래서 그것을 부러워하든 화가나든 그에대한 반응은 결국 하나님에대한 의구심 내지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마음이든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의아해 하거나 원망한다는 것은, 형통이란것이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더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과연 형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 형통에 대해서 단순히 생각하기를 잘 되는 것,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어려움과 막힘없이 쭉 풀려 나가는 것이라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형통이라면 그 형통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면 거기에 더 이상 하나님을 연관시켜 의아해 할 이유도없고 더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형통함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악함에 대한 심판만이 예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형통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형통함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 내지는 세상의 기준으로 결론짓는 일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에 대해서 또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에는 꽃 길만 걷는 삶이 아닙니다.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고 살펴 보더라도 그 누구도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삶이 늘 만사형통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성경은 하나를 더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성경은 형통과 곤고를 함께 언급하면서 두 가지가 우리 인생에 병행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방법임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다 형통케 하시고자 하는 분이시지 절대 곤고케 하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곤고한 날이 있습니다.

이 때는 되돌아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까?

무엇을 생각하며 되돌아 보고 있습니까?

곤고한 날에는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이지, 곤고한 날에 악인의 형통함을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기 위하여 곤고한 날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이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형통함 같은 악인의 번영을 왜 묵상하려 하십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의심하는 불신앙의 마음을 품으라고 사탄은 자꾸 속삭이는 것입니다.

'저리 악해도 더 잘 되는구만. 너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 어때?'

'저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다는데 나도 한 번 저렇게 해 볼까?'

'뭐 하나님도 침묵하시는구만. 나만 손해보는거 아닌지 몰라'

곤고한 날이라면 생각해야지 악인의 번영을 묵상하려 하지 마시기바랍니다.

또 하나를 묻습니다.

악인의 기준을 어떻게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판단하는 악인은 누구입니까?

번영하는 듯 보이는 악인이 있다고 칩시다.

그는 여러분에 의해서 판정된 악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선포하신 악인입니까?

그렇다고 제가 악인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악함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되돌아보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번에도 묵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여러분의 신앙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해가 되는 묵상을 왜 하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마르다는 오직 예수님을 묵상하며 예수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할 때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음식 장만하느라 정신없고 수고가 많은 가운데 동생 마리아를 보는 순간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마르다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떡하니 앉아만 있는 마리아.

음식준비가 얼마나 바쁘고 수고스러움을 알면서도 와서 일 손을 돕지 않는 아주 얄밉고 괘씸한 동생.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마리아에게 음식 장만하는 언니를 도와주라고 귀뜸도 안해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서운함.

방금 전까지 마르다는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께 드릴 음식을 준비할 때는 즐거웠는데, 묵상이 바뀌는 순간 몰려오는 곤고함은 마르다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곤고함 자체가 분노를 일으켰다는 것이 아니라 곤고한 중에 생각해야 하는데, 그저 천하태평인 마리아를 보니 참으로 나쁘고 그것을 묵과하시는 예수님께 서운한 마음이 분노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때 어쩌면 마르다는 예수님 앞에 편안히 앉아있는 마리아의 모습을보며 순간 악인의 형통함쯤으로 인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악인은 없다는 말이나 마리아가 악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묵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묵상하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악인이 잘 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거기서 묵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을 볼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 곤고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곤고함이 없는 형통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곤고한 날을 거부하며 형통한 날만 바라는 것은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악인의 번영만을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오직 번영을 위하여 곤고함을 거부할 뿐 아니라 곤고한 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곤고함마저 씌우려합니다.

오직 자신의 번영만을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이루어낸 형통함이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은 형통이 아닌 심판과 패망을 향해 달려가는 번영을 가장한 우상일 뿐입니다.

이에 악인의 형통함을 볼 때는 그저 부러움 내지는 분노입니다.

요셉의 형통함을 살펴 보더라도 여기에는 곤고함이 있고 은혜가 있으며 축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형통함은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소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나누고 공급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어느 틀에 갇혀있을 수 없듯이 형통함은 한 곳에만 자리잡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존재 하듯이 형통한 때와 형통한 장소와 시절이 있다면 곤고한 때와 곤고한 장소와 시절도 병행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평안을 놓치지 않고 두려워 하지 말 것은 이 모든 것이 형통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형통한 삶에는 당연히 곤고한 날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악인의 형통함은 온 통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부러워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원망한다는 것은 결국 의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기심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에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같은 본문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번역합니다.

"너는 악한 사람들을 시기하지 말며 그들과 함께 있는 것도 바라지 말지어다"(잠24:1)kjv

"악한사람들을 시기하지 말며"

결국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시기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시기하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롬13:13)

더구나 악인을 시기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악인은 멀리하고 경계할 대상이지 시기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악인의 형통함을 보게 때에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번영을 묵상하며 시기할 것이 아니라 부러움과 분노로 시기하려하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묵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곤고한 날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은 결코 형통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그들의 번영을 부러워하지도 또 시기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형통케 하시기 위하여 오늘 당신을 곤고케 하실 때,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 오직 주님을 생각하며 묵상할 것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잠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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