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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사랑의 標的과 一針'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11-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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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사랑의 標的과 一針 ♧

    앞날이 유망한 한 젊은이가 복숭아 재배자로서 입신(立身) 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리인 줄 알면서도 복숭아 과수원을 매입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 꽃이 만발한 복숭아 과수원에 자신의 모든 것, 곧 물질과 시간과 온몸과 마음과 모든 지혜와 노동력을 투자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는 듯했으므로 청년은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그가 의기양양하여 '역시 하나님은 내 편이시야!'라고 생각할 때쯤, 그러니까 이제 바야흐로 과목마다 탐스러운 복숭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씩씩하게 자랄 즈음에 서리가 내렸다.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정성이 죄다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에 낙심한 청년은 다가온 주일에 교회 출석을 기피하고 말았다. 그다음 주일도, 또 그다음다음 주일도 연속적으로 교회 출석을 하지 않았다. 이를 염려한 담임 목사님이 마침내 청년을 심방하여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나 청년은 툴툴거리며 "저는 앞으로도 계속 교회에 나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몹쓸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 목사님께 "목사님은 애써 키운 복숭아들을 서리를 내려 죄다 죽여 버리실 정도로 가혹하신 하나님을 제가 계속 경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오히려 힐책하듯이 반문하며 큰 소리쳤다. 그제야 청년의 신변에 일어난 상황을 알아차린 목사님은 잠시 침묵하며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그런 아픈 일이 있었군! 나로서도 자네에게 딱히 할 말이 없네! 또한 자네의 현실에 위로의 말 한마디뿐 달리 아픔을 나눌 수 있는 형편도 되지 못해 미안하네. 다만 자네나 내가 믿고 경배하는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네 복숭아들보다 자네 자신을 더 사랑하신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네."

    잠시 청년의 반응을 주시하신 목사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분은 서리가 내리지 않아야 복숭아들이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하지만 서리 없이는 우리 인간이 건강하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신다네. 그분의 관심은 사람을 키우는데 있지 복숭아를 키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세."

    은퇴를 곧 앞두고 계신 연로하신 목사님은 다소 긴장한 청년에게 당신의 생애에 속속들이 묻어 있는 연륜의 무게를 어떻게 인지시킬까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유고 심방의 경우에는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 하기에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그 심방 결과는 어떻게 결과 되었는지 모르지만, 청년의 가치관이 신앙 우선순위의 영적 가치관으로 정립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탕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목사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이 우이송경(牛耳誦經)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편 하나님께서 그의 영성을 목사님의 가르침에 부딪히게 하셨다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위 사례의 경우에도 후자의 한편을 엄청 기대하고 심방하는 주인공들이 목사님들이고 심방 대원들이다. 복음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양면성을 선포하거나 전파하는 신국 건설 현장의 사역(신국 건설) 행위다. 물론 전면에 오픈되는 복음의 내용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하여 위 청년의 복숭아 과수원처럼 꽃이 만발하고 그것이 열매 되어 주렁주렁 풍년을 기대하게 하는 꿈과 비전이 모든 복음 전파의 현장에 꿈틀거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떤 농부가 열매를 기대하지 않고 논밭에 씨앗을 뿌리고 종묘를 파종하겠는가? 하지만 위 청년의 복숭아 과수원에 때 이른 서리가 내린 이후의 사정도 이미 예상된 염려였다.

    과수원이나 논밭에 땀 흘려 김을 매고 가꾸고 애써는 이유가 바로 예상되는 염려의 상황 때문이고, 부지런히 드나들며 살피고 또 살피는 이유는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실농(失農)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실농을 경험하는 것은 뼈아픈 현실이나 피할 수 없는 신국 건설 현장이다.

    만약 그 뼈아픈 실농으로 인해 위 청년처럼 하나님을 향해 책임론의 소재를 따진다면 아마 이 지상에는 교회라는 이름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경험되고 체험된 교회의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시면서까지' 말이다.

    냉대 받고, 거부 당하고, 온갖 핍박의 수모를 당하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나를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싸게에 감싸 주신 그 사랑과 은혜의 지고한 가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남을 느껴야 함일 것이다.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점점 둔화되어 가는 교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낙심보다는 아직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의 존귀성에 감사해야 함이 옳다. 

    바울은 부활을 불신하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농락 당하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우리 기독자 들일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부활의 절대성에 더더욱 다가서서 감격하지 않았는가!(고전 15:16~19) 위 이야기 속의 노종이 권면한 하나님 사랑의 표적이 복숭아가 아닌 사람에게 있다는 일침이 오늘은 그대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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