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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함께 받는 고난'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2-11-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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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함께 받는 고난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육신의 삶에서 위의 것을 찾기 위한 세 번째 태도는 ‘긍휼(Compassion)’입니다. 긍휼의 영어 단어는 Com이라는 함께와 Passion이라는 고난을 합한 단어입니다. ‘함께 고난을 받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준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와 함께 몸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을 찾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거룩한 공간인 지성소로 들어가시지 않고 성문 밖으로 가셨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상처받는 곳, 고통이 있는 장소, 깨어진 아픔과 두려움,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죽음의 자리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은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위해 연약한 자들과 함께 더 연약해지셨고, 상처 입은 자들과 함께 더 상처입기 쉬운 자가 되셨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더 힘없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편파적이고 배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은 열려있지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는 더 많은 긍휼이 필요합니다. 하늘 아버지가 필요한 존재, 영원한 남편이 필요한 존재, 영원한 안식을 구하는 존재들이야말로 하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젊고 젊은 생명들이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죽었습니다. 진정한 축제가 없는 사회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만들어서 함께 즐기고자 한 것뿐이었는데,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나라의 무관심으로 죽었습니다. 분열과 사사로운 욕망은 우리의 미래를 또 다시 허무한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아이들이 미래라고 하고 희망이라고 말하는 거짓 구호들만 난무하는 이 세상을 심판하듯 그들의 죽음은 우리를 더 부끄럽게 합니다. 


가장 급진적으로, 그리고 질적인 변화를 상상하면서, 오늘도 긍휼의 마음으로 새로운 사회변화를 만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jso848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