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중 목사 |
요즘 우리 사회를 깊숙이 파고드는 단어는 ‘혐오’입니다. ‘혐오’는 무언가를 극도로 싫어하고 미워해서, 기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혐오는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일종의 방어기제인데요. 우리가 오염물질이나 해충 등을 혐오해서 멀리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혐오해서는 안 되는 대상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특히 사람에게 향하는 혐오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특정 조건만으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그것이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서,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학가의 축제에도 ‘혐오 바람’이 불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함께 축제를 하는 대학끼리 상대를 너무 심하게 깎아내린 겁니다. 경쟁을 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공방은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도가 지나쳐, 발음이 욕설에 가까운 현수막이 캠퍼스 한복판에 걸렸습니다. 또한 상대방이 가장 감추고 싶고, 아파하는 일을 조롱거리로 삼기도 했습니다. 보는 이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축제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가 된 것이죠.
심지어 이러한 혐오는 상대 학교뿐만이 아니라, 같은 학교 학생들을 향하기까지 했습니다. 같은 학교이지만, 지역이 다른 캠퍼스의 학생들을 비하한 겁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너희가 축제에 와서 사진 찍는다고 정품이 되냐? 어차피 너희는 짝퉁”이라는 상식 이하의 글도 올라왔습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주최측을 강하게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는데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축제 참가자를 ‘입장객’으로 분류하고, 각종 차별대우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축제는 가능하다면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합니다. 즐거움이 가득해야 하는 축제에 ‘혐오’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혐오가 축제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잠식한 것일까요? 저는 먼저 혐오가 일종의 ‘재미’가 된 것 같은 분위기가 염려스럽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끔찍한 ‘혐오 범죄’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일까요? 이제 웬만한 것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하는 사람은 너무나 괴로운데, ‘재미있는데 뭐 그런 걸로 그러냐’는 분위기가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혐오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해, 남을 혐오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겁니다. 절대로 남을 혐오한다고 해서, 내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역시도 결국에는 다른 조건으로 인해 언제든 혐오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나를 과시하기 위해, 남을 혐오하는 것은 결국 모두가 죽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혐오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이어야 합니다. ‘재미’나 ‘과시’를 위한 공격수단으로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얼마간이라도 ‘혐오’를 ‘혐오’했으면 좋겠습니다. 혐오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만,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절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시아뉴스통신=김학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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