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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씨위드 & 퀠파트, 제주에서의 사적인 글로컬 실험

  • [제주=아시아뉴스통신] 이재정 기자
  • 송고시간 2018-01-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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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대체 뭐가 있는데',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는 평론가
예술을 매개로 시민들의 광장과 놀이터 플랫폼을 꿈꾸는 이나연 씨위드 편집장. (사진제공=씨위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아를 화가동아리'가 생각났다. 고호가 밝은 노란 빛에 집착하던 시절, 빈센트 반 고호가 고갱과 교류하면서 바램을 가졌던, 고호, 고갱, 로트렉까지 '아를 화가동아리' 시절을 만끽했을지 모른다. '문화예술섬 제주'는 멀리 있지 않다. 평론가 이나연씨의 글을 읽으며 이미 가까워진 문화예술사섬 제주, 나아가 '제주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꿈꾸게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편집자 주]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가 세계적 시각을 가지고 나의 시간을 산다면, 그 활동 무대는 좁은 지역이 아니라 넓은 세계가 된다는 것. 대도시에 살더라도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따라 운신의 폭은 두메산골에 사는 것처럼 좁아질수도 있고, 그 역도 가능한 거였다"

글로벌 예술 프로젝트와 전시, 기관을 후원하는 비영리 조직인 루마파운데이션의 대표 마야 호프만(Maya Hoffmann)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한 루마 아를 건립에 관한 질문들이 많았다. 2018년 완공 예정인 루마 아를 프로젝트는 프랑스 아를지역에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건물을 짓는 것을 포함 150밀리언 유로(200억원 가량)의 비용을 들일 예정이었다.

반 고흐가 머물렀던 곳 정도로 유명한, 남프랑스의 휴양도시인 아를 지역 전체를 예술도시로 탈바꿈 시킬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장본인이 바로 마야 호프만이다.


그는 세계 미술계의 주요 행사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후원자이자 유명 기관들의 이사로 활약하기도 한다.

작은 도시를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내비치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에게 작금의 젊은 기획자나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다. “세계적이기 전에 지역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반향을 노려야겠죠. 당신의 시간을 살고, 담력을 가지세요.(Be local before you become global, but aim for global resonance. Live with your time and be courageous.)”
 
global과 local의 합성어인 글로컬,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를 꿈꾸는 씨위드. (사진제공=씨위드)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운이 좋아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외국에서 생활하며 양껏 견문을 넓힐 기회도 얻었다.

7년을 서울에서 7년을 뉴욕에서, 그렇게 14년에 가까운 기간을 제주를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마야 호프만의 문장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가 세계적 시각을 가지고 나의 시간을 산다면, 그 활동 무대는 좁은 지역이 아니라 넓은 세계가 된다는 것. 대도시에 살더라도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따라 운신의 폭은 두메산골에 사는 것처럼 좁아질수도 있고, 그 역도 가능한 거였다.

진부하다는 비난이나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마야 호프만이 재력과 능력을 가지고 벌이는 지역적 활동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실 나의 글로컬-지구적(global)와 지역적(local)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를 이르는 조어- 도전은 안전한 취직과 함께 시작된다.
 
씨위드가 도모하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의 글로컬을 학습, 체험하는 플랫폼이다. (사진제공=씨위드)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라 민망하다. 2015년 4월, 취업과 함께 제주로 돌아왔다. 뉴욕에서 제주로 바로 들어온 이주였다. 2014년 10월 개관한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입사했다. 내 변호를 하자면, 대기업 헤드헌터에게서나, 프리랜서로 기고하던 매체에서 좋은 직책으로 취업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에서 큐레이터 보조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선택이었다. 일단 뮤지엄을 세운 아라리오란 기업 자체는 미술계에선 일할만한 직장이었다. CEO가 세계적인 컬렉터인 까닭에, 뮤지엄에서 다루는 작가군과 작품이 실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천안이라는 지방에 본사와 갤러리를 두고 성장한만큼 문화적인, 특히 현대미술의 색이 짙은 기업이었다.

천안에 이어 제주라는 지방에 뮤지엄을 세울 만큼 지역을 중심으로 두고 일을 도모하는 데는 충분한 노하우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던 글로컬을 학습하고 체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문화적으로 척박하던 내 고향 제주에서 우고 론디로네, 피에르 위그, 장 환, 수보드 굽타 등 세계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들을, 혹은 작품들을 다루고 이해하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라리오뮤지엄 덕이었다. 그 뮤지엄의 설립이 내 귀국을 빨라지게 했고(늘 제주로 돌아올 틈을 노리는 중이었다),

제주로 돌아와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았다. 문화계의 젊은 기획자가 부재하던 터에, 제주 출신의 젊은이가 신선했는지, 많은 분들이 과분한 애정을 보여주셨다.
 
씨위드는 지역 문화공간과 아티스트들에게 세상을 향한 소통 창구가 되어 준다. (사진제굥=씨위드)


2013년 이후의 제주는 변혁의 중심에 있다. 개인적 이야기로 한정해 풀어야 할만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제주는 소화하기 힘든 격변을 치르는 중이다. 한 해에 몇 개의 아트페어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미술과 연관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쏟아지듯이 열렸다.

문화공간도 다양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아트센터로 재탄생한 구제주대학병원 ‘이아’라든가, 산지천 공원에 문을 열게 된 산지천 갤러리는 물론 문화공간 양, 아트스페이스씨 등 작품전시 공간이며 레지던스가 시작되거나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기간이었다.

현재 제주에서 전시를 할수 있는 문화 공간은 어림 잡아도 50여곳에 가깝다. 인프라가 구축되며 좌충우돌하는 기간,  제주는 문화적 활력이 넘쳤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역에서의 정착은 어렵지 않았다.

무려 첫 일터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영화를 보러다니던 탑동시네마에 생긴 미술관이었으니까. 탑동시네마가 1999년 개관 당시 선물받았을, 커다란 전신거울이 계단참에 그대로 있고, 이전에 쓰였던 타일이 과거의 쓸모를 추억하며 감각적으로 남겨져 있기도 했다.

비엔날레나 해외를 다니면서 보던 유명작가의 대형작품을 내 추억이 깃든 고향 공간에서 본다는 것은 글로컬이라는 개념의 시각화와 다름없기도 했다.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다만, 사업주의 취향과 컬렉션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사립미술관에서 스텝으로 일한다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 기대지 않더라도, 제주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일거리가 있어 보였다.
 
글로컬이라는 시각화를 경험하게 한 아라리오뮤지엄과 김창일 회장. /아시아뉴스통신=이재정기자


귀국 전에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제주에 일거리가 없으리라는 오해는 1년여간 직접 살아보며 말끔히 해소됐다. 그래서 2016년 6월, 퇴사했다. 퇴사 후 스코틀랜드 글랜피딕 국제 레지던스에 참가하게 된 작가 남편을 따라 두달여간 스코틀랜드에 다녀왔다.

미국, 영국, 호주, 중국, 인도 등 9개국으로부터 참가한 작가들이 3개월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한적한 시골에 머물며 작가들끼리의 교류는 물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글랙피딕이라는 스카치위스키 양조장과 양조장이 모여있는 일대야말로 글로컬의 구현과도 같았다. 계곡의 맑은 물에 의지해 스코틀랜드에서도 한참 외곽의 시골지역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는 이제 전세계에 팔려나간다. 이제 이 세계적인 위스키는 세계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아 그 지역에서 영감을 받고 작품을 제작하기를 기대했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작가들끼리의 네트워크는 글렌피딕이라는 이름 하에 활발히 이뤄졌다.

그 나라에서는 유명한 작가들이기에 각 나라의 미술관련 종사자가 작가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고, 그 시골 안에서 하나의 아트씬이 만들어졌다. 레지던스의 결과를 발표하는 전시의 오프닝날 시모임을 하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낭송회를 하기도 하고, 마을의 댄스모임이나 행사에 작가들이 참여해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이라는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같은 해 9월 초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더프타운과 비교했을 때 제주는 큰 도시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던 것이고, 더프타운은 더프타운대로 제주는 제주대로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문화활동을 하면 되는거였다.

다시 말하지만,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제주라는 지역으로 급격한 이주를 겪으며 우려했던 문화관련 직업을 유지한 채로의 정착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씨위드를 통해 세계의 무수한 로컬들과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제공=씨위드)


제주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두어시간은 얘기해줄 컨텐트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과제. 어떻게 이 지역에서 세계적인 반향을 노릴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 그간 세계의 무수한 로컬에서 다양한 형식의 실험이 있어왔다.

아마 비슷하게 비엔날레, 아트페어,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어떤 지역은 실효를 거두고 어떤 지역은 실패를 경험했다. 더프타운의 글랜피딕 레지던스는 한 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프로그램의 사례였다. 그렇다면 제주는?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제주에선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빈약한 경험과 자본으로 지역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엔 사실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같은 개인이 여럿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있지 않은가.

내가 제주에서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면, 미국, 일본, 유럽의 친구들이 같은 정보를 공유한다. 그 친구들의 활동이 내게도 실시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범위의 정도를 떠나 해외 커넥션을 유지한 개인들이 제주로 더 돌아와 준다면 한번 신나게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나연 씨위드 편집장은 출판사 퀠파트를 통해 두 권의 미술 단행본을 출판했다. (사진제공=퀠파트)


그래서 2016년 11월 말, 런던에서 8년째 안 돌아오고 있는 고향 후배를 끌어내 제주에서 전시를 열었다. 석사 박사를 거치며 확장한 현지 인맥도 풍부하고, 그룹전과 페어 등을 통해 현지에선 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테이트 미술관에서 바리스타로 알바하며 작업하는 이 후배의 전시 제목은 “테이트의 바리스타.”

그 친구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안/못 돌아오고 버티는’ 후배와 동기들을 계속 불러볼 생각이다. 제주에 지내면서 세계를 조망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끔 밖으로 놀러나가 다시 제주를 생각해보는 일이 어찌나 신기하고 신나는지 그들과 공유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적은 그들을 제주에 눌러 앉히는 것. 그렇게 그들의 친구들과 나의 친구들을 다시 엮어, 제주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신나게 놀아보는 일이 내가 꿈꾸는 글로컬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마야 호프만이 십여년째 함께 일하는 작가와 큐레이터로 꾸린 핵심그룹이 있다. 리암 길릭, 필립 파레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베아트릭스 루프, 톰 에클레스로 이뤄진 이 어벤져스같은 모임은 루마 아를의 자문이라는 명목하에 모인 동시대 가장 잘 나가는 작가와 기획자다. 루마 아를의 미래는 호프만 혼자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내가 제주로 돌아오자마자 낸 사업장의 명칭이 퀠파트다. 출판업을 하는 곳으로 등록한 이 이름은 유럽고지도에 표시된 제주의 옛 지명이다.

아주 오래전 외국인의 시선은 제주를 퀠파트라 명했고, 이제 제주인의 시선으로 새삼스럽게 그 퀠파트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유럽 고지도에 표기된 제주 옛이름 퀠파트는 이나연씨의 지혜를 돋보이게 한다. (사진제공=씨위드)

* 이나연 - 씨위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