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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목사, '우리 몸의 그리스도의 흔적'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0-08-1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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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사진제공=하나교회)

우리 몸의 그리스도의 흔적

자유를 오용했던 것이 허물이라고 말한다면, 죄악은 무엇일까? ‘죄악’을 영어단어로 하면 ‘Iniquities’이다. ‘In’은 반대라는 개념이고, ‘equites’는 평등의 의미가 있다. 죄악은 평등의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 아담이 평등을 ‘선악을 아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과 하나님이 평등하려면,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을 죄악이라고 말한다. 죄악은 평등을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등함을 추구해야지만 세상이 평등하다고 믿는다. 경쟁하고 비교해서 최고의 자리, 최고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만큼 위대한 존재가 되어야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등은 그 평등과 반대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고, 사람 가운데에서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나님의 평등은 동등한 권위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려는 ‘눈높이’ 평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기 위해서 평등해 진다.’ 하나님의 생명을 위한 생명의 평등이다. 그 평등을 반대하고, 그 평등을 무시하는 것이 죄악이다. 

이 가짜 자유와 거짓 평등이 결국 주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다시 말해 우리의 가짜 자유와 거짓 평등으로 주님은 찔림을 당하셨고, 주님은 상함을 받으셨다. 그 대가지불로 우리는 평화를 얻었고 치유 받고 회복되었다. 

우리 몸의 그리스도의 흔적, ‘지금 이곳에서’ 신앙의 원칙으로 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몸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힘들지만 기쁘다고 했고, 원망보다는 감사를 했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절망하지 않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평화와 치유와 회복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고백이고 증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몸의 흔적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고통과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마지막 축복의 말로, 은혜를 기억나게 새김질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 지어다’라는 마지막 은혜의 능력을 선언한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2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 안에 있을지어다
갈라디아서 6장 17-18절, 이사야 53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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