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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신이 아니다'

  •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 기자
  • 송고시간 2021-04-10 05:00
  • 뉴스홈 > 종교
말씀의빛교회 윤용 목사.(사진제공=말씀의빛교회)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신이 아니다]
(출애굽기 2:11-25)

1. 

하나님이 무심한 것 같다.
자기 백성인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학대를 당하는데 
하나님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서다.


모세가 오히려 정의로운 것 같다.
모세는 자기 민족과 상관없이 
이집트의 왕족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출 2:11-12, 새번역) 「11」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왕궁 바깥으로 나가 동족에게로 갔다가,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그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12」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자기 동족인 히브리 사람들이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프던 차에, 
한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었다.

하나님의 무심함과 비교하면
얼마나 정의롭고 멋진가?

2. 

그러나 모세의 정의로움의 결과는
자기 동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모세는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무모하고 혈기만 넘쳤던 것임이 증명되고 말았다.

이제 모세는 광야에서 그저 소시민으로 살아야했고,
환경도 그렇게 되어서 
십보라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출 2:22, 새번역) 십보라가 아들을 낳으니,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다.

이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은 어디 계셨을까?
히브리 민족이 학대 당할 때,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 민족을 부당하게 괴롭힐 때,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일 때도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신 것 같다.

히브리 민족의 학대를 막아주시고,
모세가 사람 죽일 때 나타나서 못하게 하시고 
그래서 모세가 바른 길로 자기 백성을 돕도록
깨우쳐 주셨어야 하나님 아닐까?

모세가 잘못하긴 했지만 
자기 백성을 위해 혈기를 부린 것이니,
하나님이 속히 나타나셔서 그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시고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셔야 하지 않았을까?
모세가 자신을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라고 탄식하며 아들 이름을 지을 만큼 낙심하고 만들면 안 되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 중에 하나님은 왜 무심해 보일까?

3.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치렀다.
아들이 사춘기를 치렀던 5년 동안이 
나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길을 가면 거의 매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항변했다.
"하나님.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변해서 착한 아들이 되게 해 달라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이런 상황에서 아비로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만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항변하고 기도하고 탄식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부산 남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다녔다.

미성년자인데 담배를 피는 아들이 
담배를 끊게 하려고 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결국 담배를 끊지 못했다.

미성년자는 담배를 구입할 수 없어서 
담배를 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를 것이 뻔했기에,
일주일에 두 번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해주었다.

나를 위해서는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이 없었던 담배,
어릴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구입해본 적만 있었던 담배를
아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구입한 것이다.

담배를 구입할 때마다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아들을 위해 담배를 구입합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라도
아들이 담배 끊게 해주시고, 바른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현실은 암담했다.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바쁜 상황 속에서도 
하루 종일 아들 생각에 묵직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고 궁금했다.

참으로 절망적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울고 기도하고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틈만 나면 새벽이고 저녁이고 교회에 가서 
기도 아닌 기도를 쏟아 놓기도 했다. 

4. 

모세가 어떻게 광야 생활을 했을까?
나는 나의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다. 
게르솜은 '나그네된'이라는 뜻이다.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을 만큼
모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괴롭고 아팠을 것 같다.
절망스러웠고 의미가 없었으리라.

자기 백성을 향해서 무심한 듯 보이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궁긍증과 답답함을 쏟아 놓았을까?

한순간에 나그네로 전락한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그래서 살아야 하니 목동으로서 양을 치며
의미없는 삶을 하루하루 이어갔으리라.

5. 

하나님이 무심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을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어떻게 하셨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다.

(출 2:23-25, 새번역) 「23」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일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24」 하나님이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25」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

하나님이 제법 오랜 세월 동안
히브리 민족에게 무관심한 듯 보였는데,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는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이르렀다는 점이 다소 충격이다.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의 종살이와 처지를 생각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신다.'
특히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신다.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셔야
언약을 기억하시고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신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고 
종살이의 고통을 보시고 
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셔야 
무언가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6. 

하나님이 나의 탄식 소리를 들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고,
다들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는 없었다.

길을 가면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행해 탄식하고 질문하고 항변했던
나의 기도 같지 않은 기도를 
하나님은 완전히 무시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심지어 몇 년이 지나도 
아들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기도 아닌 기도를,
항변하고 질문을 쏟아 놓고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달라고 생떼를 쓰는 그 행위를 
하나님을 향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은
아들이 여전히 맘에 들지 않게 행동했지만
아들과 사이가 나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였다.

학원 일을 마치고 귀가해서 
지치고 힘든 몸을 이제 좀 쉬려고 하는 찰나에 
아들에게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생이 밤 12시가 넘도록 바닷가에서 놀다가
버스가 끊어져서 태우러 와 달라는 전화였다.
군말하지 않고 가서 태워왔다.

아들을 태우러 가면서 또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이러는 것을 봐서라도 
아들을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 세월이 몇 년이 되니 
아들에게 표시를 내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마음의 아픔이 사그라들진 않아서 
하나님께는 계속 항변하고 질문을 쏟아 놓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마음으로 울고 또 울었던 시간들이었다.

7.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야 
이제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 시간들 동안 하나님을 향해서 탄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울고 질문을 쏟아 놓고 
하나님을 향해서 항변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 동안 
죽을 수는 없으니 꾸역꾸역 먹고 일을 하며 살았지만,
그 고통스런 시간들을 하나님께 항변하고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통과했다는 사실이 
나의 인생에 큰 획을 그은 것 같다.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하나님과의 추억'이 만들어진 시간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전혀 대답하지 않으셨던 것 같았던 시간,
무심하게 나를 대하셨던 것 같은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시간들을 회상하면
그 시간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분명히 홀로 외쳤던 외침과 질문들이었는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겠다.

외롭고 답답하고 죽을 것 같았던 그 마음을 
다른 곳으로 분출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쏟아 놓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말씀을 묵상하길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의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하나님은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항변하는 소리도 들으시고 
쏟아 놓는 질문들도 다 들으시는 분이심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탄식할 때, 항변할 때, 질문을 쏟아 놓을 그 당시에는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들으신다고 믿고 
항변도 질문도 탄식도 쏟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셔서 
나의 처지를 생각해 주시길,
아들들의 처지도 생각해 주기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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